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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face
2021년 12월 20일
수정: 2021년 12월 20일

시즌2. 5. 하늘에서 온 사람들 (소설)

게시판: Three Kingdoms 시나리오

며칠 후, 루트반은 실비아가 순항선을 타고 소행성 자원 탐사를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훌쩍 떠나버린 그녀에게 무척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궁금하여 그는 그녀의 순항선에 연락을 취했다. 몇 번이나 수신을 거절하던 그녀가 드디어 무전을 받았다.


“왜 그런거야? 내가 뭘 잘못했어?”


루트반이 물었다.


“아니에요. 플랜트가 너무 답답해서 그랬어요.”


실비아가 대답했다.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그래…. 금방 돌아와야돼.”


루트반은 할 말이 많았지만, 막상 그녀와 통화를 하고 나니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런 그녀의 돌발 행동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겨우 울음을 참고 루트반이 다시 말했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알아요.” 실비아가 짧게 말했다.


무전이 끝나고 루트반은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우주 공간 멀리 있는 실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였다. 자신이 플랜트에 있는 한,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루트반과 함께 떠날 수도 없었다. 좁은 플랜트에서 갈 곳이라고는 없었다. 더더군다나 루트반은 플랜트를 위해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루트반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 보나르 역시 심한 충격을 받았다. 평생 한 번도 자신을 거역하지 않던 실비아가 무단으로 순항선을 타고 떠나버린 사실을 알게되자, 혼담이 오고가던 로트필드 가문에 무어라 변명을 해야할지도 막막했다. 보나르는 순항선에게 플랜트로 즉시 회항하라는 지시를 보냈지만 실비아는 지시를 무시한 채 더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알려진 소행성 지대 중 플랜트와 가장 멀리 떨어진 PWQ-95 지역은 선단에서 가장 빠른 순항선으로도 보름 이상 항해를 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였다. 실비아와 12명의 선원들이 탄 순항선은 미스트롤리움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17번 소행성에 바짝 붙어 있었다. 실비아는 플랜트에서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자 소행성 탐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스캔 결과가 나왔나요?” 실비아가 물었다.


“이제껏 발견한 어떤 소행성보다 미스트롤리움 함유량이 높습니다! 거의 두배 가까이 됩니다.” 동료 조사관이 신이 나서 외쳤다.


“그럼, 보물을 줏어담는 일만 남았군요. 채굴선 준비해주세요.” 실비아가 말했다.


순항선의 도크가 열리고 5명의 인원을 태운 채굴선이 17번 소행성으로 출발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조종실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보나르 선장님! 항성풍입니다!” 항해사가 소리쳤다.


“왜? 그런 경보는 없었잖아!” 실비아가 콘트롤 화면을 보며 물었다.


“여기가 항성계의 끄트머리에 근접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까진 미처 관측이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있겠어?” 실비아가 심각하게 물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8분 안에 영향권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실비아는 속이 타고 있었다. 난데없이 우주폭풍이라 불리는 항성풍을 맞는다면 우선 강력한 전자파에 의해 모든 전자기기들이 먹통이 될 것이 뻔했다. 동력과 통신은 물론, 가장 중요한 생존유지장치마저 고장난다면 12명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실비아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플랜트로 구조요청을 보내세요!”


플랜트로 순항선의 좌표와 현재 상황에 대해 무전을 보내고 있었다. 항성풍을 직격으로 맞는다는 전제로, 생존유지장치까지 멈춘다는 걸 고려한다면 버틸 수 있는 산소량은 72시간이 최대일 것 같았다.


“전 대원들은 방사선에 대비하여, 우주복을 착용하세요. 행운을 빕니다.”


실비아는 짧게 지시를 내렸다. 플랜트로부터는 어렵사리 도망을 쳤는데, 항성풍으로부터는 더이상 도망을 치지 못할 것 같았다.


실비아가 탄 순항선이 우주폭풍을 만나 좌초되어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플랜트에서도 많은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지나친 소행성 개발 경쟁으로 인한 예상된 재난이라는 비판보다는 그들을 구하러 가야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였으나, 현실적으로 그녀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가장 빠른 우주선으로도 보름은 필요했다. 구조대가 출발한 지 채 3일이 지나지 않아 순항선의 승무원들은 모두 산소 부족으로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시신 수습을 위해서 구조대를 보내기로 했어.”


워드루프가 침통해하는 루트반에게 힘없이 말하고 있었다. 루트반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제발 나를 보내줘! 내가 그녀를 구하러가겠어. 반중력 플레이트로 날아가면 36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우주선을 개조하는데 24시간이면 충분해! 그럼 60시간이면 실비아에게 갈 수 있단 말이야!”


루트반이 위드루프의 어깨를 붙잡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워드루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반중력 기술의 마지막 열쇠인 에너지원이 없는 상태에서는 루트반의 말은 그저 상상에 불과했고, 반중력 플레이트의 시제품은 깡통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드루프는 말없이 루트반을 안아주었다. 루트반은 괴로움에 몸부림을 심하게 치고 있었다. 그때 루트반의 개인 단말기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항성풍으로 통신이 끊기기 직전에 실비아가 보낸 영상 메시지였다. 루트반은 황급히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우주복을 입은 실비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루트반. 저에요. 실비아…. 아무런 상의도 없이 훌쩍 소행성으로 떠나버렸을 때, 나 원망 많이 했죠? 미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어디라도 도망치지 않고서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 벌을 이제 받나봐요. 곧 교신도 끊어질텐데, 혹시나 하고 메시지를 남겨요.”


루트반은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무릎을 꿇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워드루프 역시 착찹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실비아의 메시지는 계속 되고 있었다.


“나 고백할 게 있어요. 화내지 말고 잘 들어요. 처음엔 아버지가 당신이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 캐오라고 시켜서 당신에게 접근했어요. 처음부터 계획적이였죠. 그건 정말 미안해요. 아, 물론, 당신이 싫지는 않았어요. 점점 당신이 좋아지기 시작하니 사실 조금은 무섭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행복했구요. 당신의 꿈에 대해 매번 들을 때면, 나도 함께 꿈을 꾸고 있었거든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 정말 우리 가족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신지구에 너무 가보고 싶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뭐…. 이렇게 되었네요. 이제 1분 후면 항성풍이 우리를 덮치게 될꺼에요. 사랑해요. 당신이 말했듯이 영원히….”


화면속의 실비아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루트반은 거의 실신 직전으로 울고 있었다. 워드푸트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실비아의 메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 중요한 말을 잊었네요! 당신의 연구에 꼭 필요한 에너지원은 바로 미스트롤리움이에요. 미스코어가 가지고 있죠. 그게 있으면 당신이 원하는 반중력 플레이트를 완성할 수 있을 거에요. 부디 날 위해서 완성시켜줘요. 사람들을 새로운 지구로 안내주길 바래요. 안녕, 내 사랑….”


메시지가 끊겼다. 루트반은 실비아를 목놓아 부르며 크게 울고 있었다. 워드루프는 눈물을 흘리다가 실비아의 말을 더듬어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미스트롤리움!” 워드루프가 외쳤다.


“루트반! 울고 있을 때가 아니야! 실비아를 구하러 가자고!”


워드루프가 울고 있는 루트반을 일으켜 세웠다. 눈물로 엉망이 된 루트반이 워드루프를 보았다. 워드루프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스코어로 달려간 워드루프와 루트반은 보나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보나르는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다가 루트반이 보여준 딸의 영상 메시지를 보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귀족에 대한 그의 평생의 꿈도,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결코 이기지는 못했다. 보나르에게 받은 미스톨리움으로 서둘러 테스트를 마친 루트반은 선단에서 가장 빠른 ‘포춘’호의 엔진에 반중력 플레이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면서 18시간 만에 작업을 마쳤다. 계산대로 36시간동안 날아간다면 실비아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정도 여유가 남아 있었다.


“어서 가서 실비아를 구해와.” 워드루트가 배웅하며 말했다.


“부디 내 딸을 구해오게나.” 보나르가 루트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루트반과 구조대가 탑승한 포춘호가 플랜트를 출발했다. 예상대로라면 산소가 떨어질 시간보다 4시간 정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루트반은 반중력 플레이트가 설치된 엔진을 점화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반중력 플레이트가 완성되었다는 사실보다 그녀를 구할 수 있게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할 뿐이였다.


“뭐라구요? 소행성의 궤도가 바꼈다구요?” 루트반이 당황하며 물었다.


“항성풍으로 소행성 지대에서 밀려나 다른 행성의 중력권에 들어가버린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28시간 정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항해사가 대답했다.


“확실합니까?” 루트반이 되물었다.


“확실한 것 같네.” 포춘호의 로버츠 선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출항한 지, 17시간이 지나 벌어진 일이였다. 정밀 관측 결과 실비아의 순항선이 있다고 예측되는 소행성 PWQ-95 지대가 항성풍으로 인해 더 멀어져버렸다는 소식이였다. 24시간이 부족했다. 루트반은 미치고 펄쩍 뛸 지경이였다.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루가 부족해서 그녀를 잃을 지경이였다.


“생각해! 루트반, 생각해!” 루트반은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자책하고 있었다.


“진정하게나” 선장이 다가와 루트반을 말렸다.


“아!” 방금까지 자해를 하던 루트반이 벌떡 일어났다. 선장이 놀라 루트반을 쳐다보았다.


“선장님! 제가 미친 짓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루트반이 다급하게 말했다. 선장은 대꾸조차 못하고 루트반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엔진실로 내려가서 투입되는 미스톨리움의 양을 두배로 늘릴 겁니다. 그럼 둘 중 하나겠죠. 더 빨라지거나, 터지거나…. 플랜트에서 너무나 다급해서 미스톨리움의 한계치에 대한 테스트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한 번 도전해봐도 되겠습니까?”


루트반이 선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선장은 말없이 루트반을 보고만 있었다.


“실패한다면?” 선장이 침묵끝에 물었다.


“과도한 에너지로 말미암아 우주공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죠.” 루트반이 말했다.


다시 선장이 긴 침묵에 들어갔다. 루트반은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선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평생 우주를 항해하며 청춘을 보냈소. 우주의 먼지가 된다해도 그다지 후회스럽진 않을거요.” 선장은 너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루트반은 엔진실로 달려가 미스트롤리움의 투입량을 조정해보기로 했다. 고농도로 압축된 미스트롤리움이 반중력 플레이트에 투입이 되었다.


“인생이 별빛과도 같다면, 나는 영원히 사랑하며 살겠네~”


로버츠 선장은 오래된 뱃사람의 노래를 부르며 엔진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포춘호가 미친듯한 속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실비아는 모든 전자기기가 꺼지고, 불빛마저 하나도 없는 순항선 조종실에서 승무원들과 어깨를 맞대고 기대 앉아있었다. 우주선의 모든 산소는 다 써버렸고, 남은 건 개인별로 우주복에 남아있는 산소에 의지해서 버티고 있을 뿐이였다. 항성풍의 전자파로 남은 것은 어둠뿐이였지만, 다행히 방사선에 의한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비아의 왼팔에 달려있는 우주복의 패널에 달린 아날로그 게이지에 숫자가 대략 ‘30’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 15분의 시간이 남아있을 뿐이였다. 거의 70시간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다들 기력이 거의 남아있지도 않았다.


“이제 각자 기도하기로 해요.”


실비아가 힘들게 말했다. 다들 대답은 없었지만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실비아는 루트반을 떠올렸다. 늘 환하게 웃던 그의 미소가 떠올라 희미하게 웃음이 지어졌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나자 웃음기가 없어지고,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어릴 때 병으로 죽어버렸던 엄마의 슬픈 눈빛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엄마…. 이제 만나러갈께요.” 실비아가 나즉히 중얼거렸다.


“쾅! 쾅! 쾅!”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실비아는 우주선이 소행성에 부딪혀 찌그러지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산소가 부족해 죽느니, 차라리 우주선이 쪼개져서 우주공간으로 흩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죽어서라도 우주공간을 떠돌다보면 루트반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점점 감겨오고 있었다. 팔에 있던 산소 게이지는 ‘0’에서 멈추어 있었다.


“실비아!”


실비아는 꿈을 꾸고 있었다. 루트반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런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루트반도 따라 웃었다. 아름다운 꿈이였다.


실비아를 극적으로 구해 귀환한 루트반은 플랜트의 영웅이 되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그 먼 곳을 단숨에 날아간 새로운 엔진 기술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워드루프는 루트반의 성공을 홍보의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 반중력 기술이 선단의 미래를 약속하고, 새로운 지구를 찾는데 큰 역할이 될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해 나갔다.


반면, 보나르의 갑작스런 전향으로 미스트롤리움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코인 트러스트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다. 제 12대 로트필드 공작인 해리엇 로트필드는 미스코어사로부터 획득한 미스트롤리움과 핵융합 기술을 토대로 플랜트 2.0 계획을 의회에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계획의 골자는 미스트롤리움을 강제로 전량 수거하여 공영화한 후, 핵융합 기술을 적용하여 플랜트의 규모를 확장한다는 것이었다. 확장된 공간은 모두 시민들의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활용된다는 그럴듯한 계획이였다.


늘어나는 플랜트의 인구 때문에 플랜트를 확장하려는 계획은 예전에도 시도된 바 있었다. 그러나 플랜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핵원자로에 한계가 있어 매번 무산되어 왔었다. 이에 미스트롤리움을 활용한 핵융합로를 플랜트 중심부에 설치하고 이를 통해 얻는 막대한 에너지로 낙원이나 다름없는 플랜트2.0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였다.


플랜트 2.0 계획은 새로운 지구에 가지 않고도 워드루프가 평소 지적해온 사회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였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플랜트에 살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시민들도 쾌적하고 안락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로트필드 가문이 짜놓은 간악한 함정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실 플랜트 2.0에 입주할 시민들에게 값비싼 입주권을 팔 계획이였다. 그와 동시에 LOPE는 입주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대출 플랜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은 또 다시 제2의 생존 대출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플랜트 2.0에 참여하겠다며 격한 호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머나먼 신지구에서 삶보다는 가까운 플랜트에서의 삶이 바뀌는 것을 간절히 더 원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또한, 로트필드는 워드루프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귀한 미스트롤리움을 허황된 꿈으로 날려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허가받지 않은 위험한 기술 개발을 한 루트반과 불법적인 방법으로 총수자리에 오른 보나르 역시 처벌해야한다고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여론이 순식간에 워드루프에게 불리하게 뒤바뀌고 말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해머 트러스트는 마땅히 내어놓을만한 대응책이 없었다. 워드루프가 물러가고 레노 발모어가 의장이 되어 플랜트 2.0의 문제점을 전면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워드루프가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기엔 너무 유하다는 비난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위드러프는 그런 비난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는 도리여 로트필드가 이 플랜트2.0계획 때문에 미스트롤리움을 독점하겠다고 한 점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 미스트롤리움을 독차지한다면 반중력 플레이트를 이용하여 엔진 성능을 개선할 기회조차 사라져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워드루프는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반중력 플레이트를 완성하고 실비아를 구한 루트반을 위해서, 배신으로 인해 코인 트러스트의 눈밖에 나 위기에 처한 보나르를 위해서라도 미스트롤리움의 독점만은 막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의장의 자리에 있는 그라해도 미스트롤리움의 독점을 제재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 방법은 코인 트러스트를 포함한 모든 의원들에게 호소하는 길 뿐이였다.


워드루프는 오래전에 작성해두었던 ‘에르시온 선언’이란 연설문을 손보기 시작했다. ‘에르시온’은 지구의 Earth에 신성한 곳을 의미하는 Sion을 붙여 만든 ‘지구인의 신성한 땅’이란 뜻의 신조어였다. 이것은 탐사 우주선이 새로운 지구의 존재를 발견하고 돌아오면 모든 엑소더스 시민들에게 발표하려고 준비했던 연설이였다. 선조들의 혼을 물려받아 새로운 지구를 찾자는 결의를 담은 내용으로 언젠가 이것을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게 어릴 적부터 간직했던 그의 꿈이였다.


워드루프는 연설문을 수정해 반중력 플레이트 기술이 사장되지 않도록 부디 미스트롤리움을 제공해 줄 것을 호소하기로 했다. 필요하다면 의장직과 버튼 가문이 가진 모든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마침내 정기 의회가 열리는 날 그는 연단에 올랐다. 그를 비웃는 코인 트러스트 의원들 앞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연설문을 꺼내 읽으려는 바로 그때, 놀라운 소식이 온 선단에 전해졌다.


“존경하는 엑소더스 선단 여러분.”


워드루프가 말문을 열었지만 의사당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워드루프는 연설을 멈추었다. 의원들이 연설은 안중에도 없이 저마다 개인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파이럿츠가 내보내는 긴급 방송이었다. 연설문을 읽으려던 워드루프는 어안이 벙벙했다. 해머 트러스트의 의원들 중 한 명이 나서서 의사당의 대형 홀로그램 생성기에 파이럿츠의 뉴스를 전송하자, 방송이 의사당 내부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방금 전 탐사 우주선 카론호가 플랜트의 중앙 통신소와 교신에 성공했습니다. 저희 파이럿츠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카론호는 그간 전설로만 알려졌던 ‘세일 호’ 메시지를 수신했다고 합니다.”


장내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워드루프는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는 얼른 연설문을 품안으로 집어넣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서둘러 단상에서 내려왔다. 레노와 루트반이 혼이 나간듯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로트필드 가문의 의석 쪽을 바라보니 로프필드 공작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한 듯 줄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워드루프!”


레노와 루트반이 동시에 그를 불렀다. 먼저 다가온 건 레노 쪽이었다. 그는 미안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네가 했던 일들을 비난해서 정말 미안해” 레노가 말했다.


“무슨 말이야, 레노. 네 덕분이야. 네가 만든 우주선이 해낸 일이라고.”


워드루프는 레노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뻐했다.


“축하해! 워드루프.”


마음 고생이 심했던 루트반이 워드루프를 와락 껴안았다. 루트반을 토닥여주면서 워드루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이야말로 반중력 기술을 어필할 절호의 기회였다.


의회는 황급히 ‘세일 호’ 신호에 대한 안건을 상정하였다. 시민들의 관심이 대단하여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을 지경이였다. 돌아온 탐사 우주선 카론호는 알려진 우주의 외곽지역에서 처음 접하는 형태의 전파를 수신해 가지고 돌아왔다. 그 전파를 해독하니 ‘세일 호’라는 메시지가 떴고 그들은 그것이 새로운 지구의 발견을 뜻한 오래된 전설적인 구호임을 알 수 있었다.


발모어 가문의 베데스다 유니버셜은 전파의 발원지를 추적하여 전파가 발신된 지점의 정확한 위치를 계산해냈다. 메시지 속에 담긴 좌표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곳이였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그 곳까지 가는 항로까지 산정해 두었다. 그것은 엑소더스 선단의 현 위치에세 몇 광년 떨어진 지역이었고, 그 사이의 우주는 소행성들이 전혀 없는 무의 공간이었다.


의회는 이 새로운 지구로 나아가는 항로를 채택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내심 플랜트2.0 계획이 세일 호 메시지로 잊혀져 불쾌한던 로트필드 공작을 비롯한 코인 트러스트는 이 새로운 항로가 너무도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이 메시지가 발신된 곳과 현 위치가 너무나 멀고 가는 도중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소행성 지대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머 트러스트 쪽은 이미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루트반 메르니와 로버츠 선장은 실비아를 구할 때 만들었던 반중력 플레이트가 탑재된 포춘호의 시범 항해에 돌입했다.


모든 시민들은 원한다면 기존 속도의 거의 수십배에 달하는 새로운 우주선을 탑승해볼 수 있었다. 결국 소행성 지대의 개척이 없이도 새로운 항로가 실현 가능함을 입증해 보인 것이였다. 포춘호의 로버츠 선장은 광속에 가까운 항해 속도로 인해 오히려 점점 젊어지고 있다고 방송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이를 지켜본 대중의 열망은 대단했다. 과반수 이상이 신지구로의 항로를 지지하고 나섰다. LOPE의 독보적 행보에 내심 불만이었던 기업들의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이 신기술이 미스트롤리움을 필요로 한다는 게 알려지자 미스트롤리움의 독점을 고집해온 코인 트러스트들에게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로트필드 공작은 미스트롤리움 독점을 철회하였고, 이는 사실상 해머 트러스트의 승리로 간주되었다. 이윽고 표결에 부쳐진 신항로에 대한 찬반 투표는 찬성이 압도적이었고, 워드루프는 반중력 기술을 이용한 신지구로의 항로 변경을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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