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
  • 콘티
  • 연출
  • 편집
  • 원고
실제 작동 상태를 확인하려면 라이브 사이트로 이동하세요.
  • 카테고리
  • 전체 게시물
  • 내 게시물
Babyface
2021년 12월 21일

시즌1. 2. 방주

게시판: Three Kingdoms 소설

시내를 벗어나서 한 시간 남짓 더 달려서야 발모어 회장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풍스런 장식이 달린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도 한참을 거대한 정원을 가로질러 도착한 유럽의 고성을 연상시키는 건물의 규모에 로버트는 한동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내부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로버트는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심호흡을 몇 번 씩이나 해봤지만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응접실로 들어서자 잿빛 정장차림을 한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버트는 발모아 회장임을 즉각 알아챌 수 있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깊게 패인 주름살이 여든 아홉의 나이를 말해주고는 있었지만, 혈색은 생기가 돌았으며, 갈색의 차분한 눈동자는 강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버튼 박사! 어서 오게.”


발모어는 싱긋 웃으며 자리로 안내했다. 로버트는 언론을 통해 발모아 회장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였지만, 사업가로서 업적과 일에 대한 태도는 존경할만 하다고 생각했었다.


젊은 나이에 맨손으로 창업하여 국가를 초월한 초거대기업을 일군 신화적인 인물. 온갖 암투와 음모와 싸워 번번히 승리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 또 전진하고 싸워 이기면서 자신의 왕국을 확장해 나간 현대의 제왕이라 불리는 자였다. 어쩌면 불가능을 두고 그것을 정복해가는 것이 그의 존재의 이유일지도 몰랐다. 그런 그자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사라진 것이다.


그동안 로버트는 발모어가 지칠만도 했다고 생각했다. 이룰만큼 이루었고, 숙원사업이였던 우주엘리베이터의 성공까지 보았으니 그만하면 멋지게 은퇴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발모어는 늙고 지쳐서 영원한 안식을 택한 늙은 사자가 아니였다.


그 누구도 모르게 다음 사냥감을 차분히 노리고 있는 백수의 왕의 풍모를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는 은퇴가 아니라 조용히 다음 전투를 위한 전열을 정돈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로버트는 자신을 이 밤에 부른 이유가 다음 사냥감과 관련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짐작이 들었다.


“발모어일세. 편히 피터라 부르게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터….”


로버트가 피터라는 이름을 힘겹게 부르자, 발모어는 또 한번 싱긋 웃어보였다.


“현재 에덴랩이라는 회사를 운영중이라고 들었네.”


“네. 새로운 컨셉의 우주항공 관련 발명품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로버트는 자신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발모어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짧게 답했다.


“전공이 건축이었지 아마? ”


로버트는 발모어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발모어가 이어 말을 했다.


“자네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많이 설계했다고 들었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던데….”


“과찬이십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일이지요.”


로버트는 살짝 긴장이 되었다. 예상대로 발모어는 무언가 일거리를 제안하려는 것 같았다.


베데스다 유니버셜에서 새로운 사업을 수주한다면 현재의 경영난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계약금을 넉넉히 받는다면 LOPE의 대출금 상환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계속 베데스다 유니버셜과 파트너 관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현실에서 동떨어진 아이디어라고 비난만 가득했던 에덴랩의 가치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로버트를 들여다보던 발모어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봐줘야할 설계도가 하나 있네. 아직은 아이디어 수준으로 러프하지만, 할 수 있다면 자네가 완성해주었으면 하네.”


옆에서 대기하던 비서가 홀로그램을 작동시키자, 탁자 위에 도넛처럼 생긴 모형이 띄워졌다.


로버트는 우주선보다는 우주정거장에 가까운 형체임을 금세 알아차렸다.


자세히 보고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보았다.


설계도의 크기 단위를 확인한 로버트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크기였다.


단순한 우주정거장이 아니였다. 단순한 우주정거장이 이렇게 클 수는 없었다.


공장, 거대한 생산시설에 가까웠다.


“이게… 뭡니까? 대체….”


로버트의 놀란 반응에 발모어는 입가에 미소를 띄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우주 개척을 위해 다양한 물자를 생산하여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이동식 우주 공장일세. 나는 그냥 플랜트라고 부르고 있지. 우리 기술자들은 이 상태로는 엘리베이터를 통한 운송이 불가능한 크기라고 하더군. 저걸 운송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겠나?”


로버트의 뇌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두어번 방향을 바꾸어 설계도를 살피면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발모어는 기다려주기로 한 듯 흥미롭게 로버트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발모어의 예상보다는 빨리 로버트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오리가미라고 아십니까? 쉽게 말해서 종이접기라고 하지요.”


“종이접기?”


“이 정도의 규모라고 해도 차곡차곡 접는다면 운송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종이접기라… 역시 천재군!”


발모어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저걸 건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왜 건조가 불가능하다는 거지?”


“인류 역사상 한군데 모인 적이 없을 만큼의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겁니다.”


“하하하하하!”


빌모어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로버트는 당황했다. 부정적인 발언으로 인해 천재일우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졌다.


“불가능이 모두에게 공평하지는 않지!”


로버트가 놀라 발모어를 쳐다보았다. 언뜻 계산해도 베데스타 유니버셜의 시가총액보다 수백배가 넘는 금액이 투입되어야 될까 말까한 일이였다. 그동안 에덴랩에서 해오던 것들은 여기에 비한다면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수 억달러가 투입되어 자신들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던 ‘애로우 프로젝트’가 작은 고기잡이 배라면 이 ‘플랜트’는 항공모함이라 할 수 있었다.


“자네가 저 불가능한 플랜트의 설계를 완성한다면, 난 자네가 말한 불가능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보이지.”


발모어의 대답이 이어졌다. 로버트는 믿기지 않았지만, 발모어의 진지한 표정으로 보아서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를 믿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도 살고 에덴랩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기 때문이다.


로버트가 사무실로 돌아온 시간은 이미 한밤이였다. 찰스는 집에 가지 못하고 계속 로버트를 기다리고 있다가,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려오자 밖으로 뛰어나왔다.


차에서 내린 로버트의 얼굴은 평온했다.


“어떻게 되었어?”


찰스가 물었다. 로버트는 찰스를 빤히 쳐다볼 뿐이였다.


“어떻게 되었냐니까?”


“찰스, 넌 항상 최고의 조력자이자, 최고의 친구였어.”


찰스는 언뜻 로버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한번 더 내 손을 잡아주지 않겠어? 방금 발모어 회장이 제안한 일을 수락하고 왔어.”


찰스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이제 지겨운 채무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로버트의 말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너와 함께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건축물을 짓게 될거야.”


로버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바로 저곳에….”


찰스는 무슨 영문인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로버트의 눈빛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로버트와 함께 길고 험난한 모험을 떠나야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시 우주라….”


찰스도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맑은 밤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쉼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바니치코프는 아시모프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정말 이대로 괜찮다고? 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마주할 기회조차 없이 사라질텐데도?”


아시모프는 화가 단단히 나있었다. 이바니치코프는 아시모프를 진정시켜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으로선 살릴 방법도 없는데….”


이바니치코프의 말은 아시모프의 분노를 조금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쾅하고 아시모프가 책상을 내려쳤다.


“이것 봐! 이건 발버둥 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그의 분노가 온전히 자신을 향하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CTBTO에서 천체 관측을 담당하고 있는 이바니치코프와 아시모프는 6개월 전에 태양계 외곽에서부터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아시모프가 최초로 발견을 했고 선임연구원이였던 이바니치코프는 몇 주에 걸친 확인과 확인 끝에 상부에 보고를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단지 ‘잘못된 분석이니 무시하라’는 것이였다. 이바니치코프가 몇 번이나 다시 보고를 했지만 3개월 째 번번히 같은 지시만 돌아올 뿐이였다. 고지식하고 순수했던 아시모프는 그러한 조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바니치코프가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며칠 전 그는 상부에서 계속 자신의 관측 결과에 대해 묵살을 한다면, 인터넷에 모든 자료를 공개를 해서 검증을 받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이바니치코프는 엄포가 아니라 경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시모프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구소장이 이바니치코프를 불렀다. 모든 관측 데이터와 연구분석 결과를 백업본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제출하라는 지시였다. 이바니치코프 역시 처음엔 반발을 했지만, 상부의 끈질긴 협박과 강요에 못이겨 아시모프 몰래 모든 자료들을 상부에 넘겨주고 말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시모프는 진실을 입증해줄 자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관측실의 집기들을 때려부셔가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미안해, 아시모프. 난 그렇게 용감하지가 않아….


그리고 데이터도 없이 이제 뭘 해보겠어? 그만 포기해 친구.”


“비겁해! 이바니치코프. 진실을 숨기는 그들의 선택의 동참한 너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야!.”


평소에 아시모프는 이바니치코프를 ‘이반’이라고 불렀다. 형식적인 자리에서나 본명을 불러줄 뿐이였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반이라 부르지 않았다.


아시모프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게 CTBTO에서 본 아시모프의 마지막 모습이였다. 그는 모든 연락을 끊어버리고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 6개월 후 ]


로버트 버튼이 이끄는 에덴랩은 베데스타 유니버셜과 계약을 체결하고 ‘플랜트’를 만드는 ‘엑소더스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강한 동기가 부여된 로버트와 찰스 그리고 에덴랩의 직원들은 밤낮을 가리지않고 일해 4개월만에 설계를 완성했다. 뒤이은 건조 작업 역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러자 단연 세상의 관심이 쏠린 건 플랜트 건조 현장이였다. 거대한 규모의 물자와 인력이 투입되자 더이상 언론과 세간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기자들의 끈질긴 공개요구에 결국 발모어 회장은 직접 경영복귀를 선언하고, 플랜트 건조에 대한 기자회견을 주최하게 되었다.


로버트가 프로젝트에 대한 브리핑을 막 끝냈다. 베데스타 유니버셜 측에서 준비해준 홀로그램과 컴퓨터 그래픽을 엄청나게 사용한 화려한 브리핑이였다. 완벽한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추고, 대규모의 인력이 장기간의 단독 우주생활이 가능한 플랜트가 완성된다면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먼 우주까지 탐사가 가능해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였다.


기자들은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놀라 웅성거리고 있었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을 능가하는 인류 최대의 건설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어떤 기자가 평했다.


아시모프는 기자들 틈에 서있었다.


CTBTO에서 일했을 때보다 훨씬 초췌한 모습이였지만 그는 로버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버튼 박사님! 이 어마어마한 우주 공장이 만들어지는 진짜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이 플랜트는 인류가 더 먼 우주로 나가는 전초기지가 될 겁니다. 그 뿐입니다.”


로버트가 대답했다.


“그 이외의 군사적인 목적은 없습니까?”


기자가 물었지만 발모어가 제지를 하고 나섰다.


“자! 예정된 시간이 끝났으니, 자세한 내용은 이메일로 질의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기자들이 원성을 쏟아내었지만, 발모어는 로버트를 데리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시모프가 슬그머니 다른 출입문으로 빠져나갔다.


로버트는 서둘러 건조현장으로 돌아가야했다. 설계와 다른 부분이 발견되어 서둘러 해결해야만 했다. 그는 황급히 주차장으로 향했다.


“당신이였군! 이 사기극의 무대를 연출하는 사람이….”


주차장 한 끝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돌아보니 아시모프가 서있었다. ‘사기극’이라는 단어가 로버트의 안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로버트는 아시모프에게 달려가 다짜고짜 멱살부터 잡았다.


“당신 누구야?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로버트가 물었다.
아시모프는 멱살을 풀지도 않고 비웃고 있었다.


“말하라구!”


“이게 사기가 아니면 대체 뭘까?”


아시모프가 멱살을 거칠게 풀고 말했다.


“대체 무슨 뜻이야?”


로버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가 궁금하지도 않아?”


그 때였다. 건물 입구에서 보안요원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보안요원들을 본 아시모프는 당황하며 로버트에게 쪽지를 쥐어주며 말했다.


“궁금하면 연락주시오.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꺼요.”


아시모프는 붙잡을 틈도 없이 황급히 다른 출구로 사라지고 말았다. 보안요원들이 아시모프를 쫒아가는 것이 보였다.


로버트는 황당해하며 쪽지를 펼쳐보았다. ‘CTBTO 아시모프 박사’란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가 남겨져있었다.


“무슨 일인가?” 뒤늦게 발모어가 도착해서 물었다.


“누가 이런 걸 주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사기극이라고 하더군요.”


발모어는 로버트가 내민 쪽지를 받아서 잠시 들여다 보고는 말했다.


“흔히 있는 일이라네, 자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서 특종을 캐내려는 기자들의 흔한 수법이지. 분명히 가짜 신분일테니, 신경쓰지 말게나.”


발모어는 로버트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로버트는 이 참에 마음에 걸리는 또 한 가지에 대해서도 묻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요즘 자주 현장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누굽니까?


마치 감시라도 하는 것 같던데, 회사 사람들은 아닌 것 같더군요.”


발모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차차 얘기해주겠네. 자네는 프로젝트에만 신경쓰게나. 시간이 많지 않네.”


발모어는 현장으로 가는 로버트를 배웅했다. 현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로버트의 머리속엔 ‘사기극’이란 단어만 맴돌았다. 로버트 자신도 처음엔 믿지 않을 만큼 거대한 이 프로젝트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쉽게 믿어주겠는가? 빨리 플랜트를 완성하여 자신과 에덴랩의 저력을 증명해보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다. 자신을 사기꾼으로 몰아붙였던 사람들에게 보기좋게 한 방 먹이고 싶었다.발모어의 말대로 시간이 많지 않았다. 또 지난 번처럼 지연된다면 ‘애로우 프로젝트’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로버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로버트 버튼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시모프는 초조했다. 로버트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눴어야했었다. 그 후로도 한 두번 접근을 시도해보았지만, 로버트 버튼은 건조 현장에서 일체 밖으로 나오지않았고 경비는 더욱 강화되어 기회가 전혀 없었다. 아시모프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만 했다. 전화기를 들어 이바니치코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아시모프….”


“뭐! 아시모프? 이봐 그동안 어떻게 된거야?”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구.”


약속을 잡고 끊었다. 믿을 사람이 딱히 없었다. 그래도 진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기에 아시모프는 모험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있다. 문제는 시간이였다. 아시모프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누르고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그의 눈 앞에는 캠코더의 빨간 녹화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녁 열시가 넘은 시간에도 웰링턴 광장은 사람들이 제법 왕래가 많았다. 몇 블럭만 지나면 유흥가가 밀집되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고, 반대쪽은 시외로 나가는 전철역이 연결되어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바니치코프는 광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아시모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시모프가 6개월전 그렇게 떠난 이후로 이바니치코프 역시 결국 관측실에서 다른 한직으로 발령이 나버렸다. 석달이 넘게 아시모프의 행방을 찾았지만 갑자기 땅으로 꺼져버리기라도 한 듯 행적이 묘연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연락을 해온 것이였다.


“자연스럽게 행동하세요. 별일 없을 겁니다.”


왼쪽 귀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시모프와의 통화가 끊난지 한 시간이 채 안되어서 검은 양복의 남자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시모프와 통화한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안전을 절대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수신기를 차고 약속장소에 나가라고 했다. 이바니치코프는 귀에 꽂은 수신기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니트 모자를 푹 눌러 써서 가리기는 했지만 행여나 아시모프가 눈치라도 챈다면 정말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아무 일 없을거야.’


속으로 되뇌이며 아시모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바니치코프! 여기야 여기!”


누군가 나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쳐다보니 아시모프가 정류소 기둥 뒤에서 부르고 있었다.


이나니치코프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시모프 쪽으로 가야하는데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아시모프가 손으로 다시 그를 불렀다. 그제서야 발이 떨어졌다.


“대체 어떻게 지낸거야?”


아시모프를 향해 이바니치코프가 물었다.


“그건 됐고, 부탁 하나만 들어줘.”


“무슨 부탁?”


아시모프는 이바니치코프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메모리 카드였다.


“이게 뭐야?”


“혹시 일주일 안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세상에 이걸 공개해줘.”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해.”


“어쩔 셈이야?”


“내일 뉴욕 타임즈 기자를 만나기로 했어.”


“증거도 없잖아!”


“내가 바로 증거야! 그리고 자료도 좀 모았어. CTBTO때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이제 그만 좀 해!”


이바니치코프는 아시모프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를 말리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였다. 아시모프는 막무가내로 이바니치코프의 주머니속에 메모리카드를 쑤셔넣었다.


“니가 나를 아직도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거라 믿어. 부탁해!”


아시모프는 그 말만 남기고 금방 들어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바니치코프는 아시모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바로 출발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측 요원이 그 쪽으로 갈테니 대기해주세요.”


귓가에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신호 대기중이던 버스에서 어떤 남자가 다급히 내리더니 반대쪽 차선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쾅!!!!!!!!!”


이바니치코프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시모프가 탄 버스가 폭발한 것이였다.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아시모프!!!!”


이바니치코프는 버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놀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시모프가 피투성이가 된 채 버스에서 튕겨져나와 길가에 쓰러져있었다.


“안돼! 제발!”


이바니치코프가 달려가 아시모프를 안고 소리쳤다.


“제발 죽지마! 누구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이바니치코프는 아시모프가 죽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미안해! 내 잘못이야! 제발 죽지마!”


“이반… 너는… 꼭 살아.” 거의 끊어져가는 목소리로 아시모프가 겨우 말했다.


“아시모프! 조금만 기다려! 구급차가 올꺼야!”


“이반… 괜찮아.”


“미안해! 미안해!”


품에 안은 아시모프의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바니치코프의 눈앞도 아득해져갔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아시모프는 숨을 거둔 후였다. 이바니치코프는 도로변에 서서 사상자들을 싣고 떠나는 구급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바니치코프씨.”


누군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돌아다보니 집에 왔던 그 남자였다.


“주시죠.”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이바니치코프는 그제서야 메모리카드가 생각이 났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집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손도 덜덜 떨려왔다. 남자는 이바니치코프가 멍하니 서있자 직접 주머니를 뒤져 메모리 카드를 꺼내갔다.


“오늘 일은 다 잊으시고, 남은 인생 즐겁게 보내시길….”


남자는 이바니치코프의 어깨를 툭 한번 치더니 뒤돌아서 천천히 사라졌다. 사고로 어수선한 도로위엔 버스의 파편들이 딩굴고, 사상자들의 흣뿌려진 핏자국들로 가득했다.


이바니치코프는 우두커니 마냥 서있을 뿐이였다.


아시모프의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뤄졌다. 가족도 없는 터라 함께 CTBTO에서 근무했던 동료들 몇몇만 참석했을 뿐이였다. 그러나 이바니치코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장 친하게 지냈던 그의 불참에 대해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충격이 커서 참석하지 않았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였다.


엘레나 이바니치코프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퇴근이 늦은 남편을 걱정하고 있었다. 항상 시계처럼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고, 다시 돌아오던 그였다. 특히 딸 안나가 태어나자 그는 거의 몇 분의 오차도 없이 항상 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곤 했다. 그런 남편이 벌써 연락도 없이 두 시간이나 늦은 것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던 남편의 굳은 얼굴이 생각났지만, 며칠 전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고 있기에 그 이유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엄마! 밖에 누가 왔어.”


안나가 거실에서 소리쳤다. 안나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현관으로 나가보았다.


“경찰입니다.”


엘레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여섯 시간 전에 남편 분의 자동차가 강으로 추락했습니다. 사체는 찾지 못했지만 자동차 안에서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잠수부들이 수색을 하고 있지만 물살이 빨라서 작업이 힘든 상황입니다.”


털썩하고 엘레나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2054년 현재 ]


저녁까지 플랜트의 마무리 건조작업을 지휘하고 있던 로버트는 발모어 회장의 호출을 받았다. 꽤나 늦은 밤이였지만, 발모어는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