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약속
사막의 하늘 위로 우주선들이 기다란 불빛을 내뿜으며 하나둘씩 쏘아지고 있었다. 발사로 인해 묵직한 진동이 바닥을 울리고 있었고, 자욱한 연기와 모래바람이 공항의 유리벽을 몇번이나 때리고 있었다.
임시공항 대기실에는 우주선 탑승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 대부분은 별로 남아있지 않는 베데스타 유니버셜 직원들을 향해 소리를 치며 우주선에 태워달라고 애원했다. 손에 든 티켓을 흔들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사람인지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바닥에 주저 앉아 눈물을 흘리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도 더럿 있었다. 시간은 그들 편이 결코 아니였다.
“여보, 직원들이 한 두명씩 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대요. 아무리 연락해도 기다리라는 말 뿐이잖아요. 돈만 먹고 튀려는게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가까운 지하벙커로 가는게….”
“걱정마. 나와 당신은 의사잖아. 우주선에는 반드시 의사가 필요할꺼니까 우릴 데리러 올꺼야. 기다려보자고….”
찰스의 가족들은 우주선 탑승구와는 조금 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우주 엘리베이터의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옆에 앉은 점잖게 생긴 중년의 의사 부부는 불안한지 계속 손에 든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그 곳은 조금의 희망이 머물 수 있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초조한 표정이였으나 탑승구에 있던 사람들처럼 고함을 지르거나 흥분을 하지 않았다. 차례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찰스 역시 같은 생각이였다. 위에 있는 로버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혹시 전화나 메시지를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기를 몇 번이나 쳐다보고 있었지만 여전히 로버트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기다리기만 해서 되겠느냐?”
찰스의 아버지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분한 표정이였다.
“우리 때문에 너까지 못타는 거 아니냐?”
찰스는 아버지의 말에 대답 대신 피식 웃음을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여동생과 함께 있던 찰스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 말에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에요. 그런 일 없을거에요. 걱정 안하셔도 되요.” 찰스는 아버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넌 여기 직원이라 티켓이 있잖니!”
찰스의 목에는 공항의 모든 출입구를 드나들 수 있는 직원용 아이디 카드가 걸려 있었다. 주머니엔 일찌감치 발급된 플랜트의 탑승권도 있었다. 하지만 찰스는 차마 가족을 두고 갈 수 없었다.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고 플랜트로 어찌어찌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다시 내려오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시간이 모자랐다.
“먼저 가거라.”
찰스의 어머니가 자리에 일어나 찰스의 어깨를 살짝 밀며 말했다.
“그리고 우릴 꼭 데리러 오거라.”
“엄마….”
찰스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로버트의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이미 탑승을 한 모양이군. 이럴 줄 알았면 낸시가 로버트랑 결혼한다고 난리칠 때, 나라도 허락할 걸 그랬나봐….”
찰스의 형인 제임스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농담을 했다. 재미라고는 없는 사람이였지만 제임스는 가족끼리 모이는 자리마다 끊임없이 썰렁한 농담을 자주 하곤 했다.
“나 듣고 있거든? 그때 나 열세살이였어.”
찰스의 여동생인 낸시가 입을 삐죽거렸다.
“하하하. 맞어, 그때 낸시가 가출하겠다고 협박편지를 써놓고 차고에 숨어있었지. 그때 내가 널 찾지 않았으면 넌 거기에서 굶어죽었을지도 몰라.”
찰스의 누나 산드라도 한마디 거들었다.
“놀라지 마라. 지금 제일 후회하는 사람은 본인 아니겠니?”
찰스의 아버지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진지하게 말을 했다. 아버지의 말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항상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아빠!”
낸시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덕분에 심각했던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 것 같았다.
“답답하지 그러고 있지말고 어서 가. 그리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렴.”
찰스의 어머니가 다시 찰스의 어깨를 밀었다.
“정말… 쓸데없이 비장해하지 말자구요. 로버트 이 녀석만 찾으면 해결될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그래 너희 둘이라면 해결 못한 일은 없었지.” 어머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금방 다녀올께!”
찰스는 가족들을 남기고 돌아섰다. 우주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보기로 한 것이였다. 이 정도로 연락이 없다는 것은 로버트와 로트필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내가 없으니까 일이 돌아가질 않나보군. 조금만 기다려 이 바보 녀석아….”
찰스는 저지하려는 직원에게 아이디 카드를 내보이며 엘리베이터의 탑승구로 들어갔다.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다. 출력을 조정하라.”
“제어가 되지 않는다! 자동 조정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상승 각도 체크! 안전 각도를 유지하라!”
“좌측 로켓 과부하!”
20초전에 마지막으로 발사가 시작된 우주선 ‘아라라트’호와 관제 센터 간의 다급한 무전이 계속 들려왔다. VIP룸에 설치된 모니터에도 삐딱하게 치솟고 있는 아라라트호를 볼 수 있었다.
“어! 어! 부딪힌다!!!!”
가장 늦게 건조되어 제대로 발사 점검을 하지 못했던 아라라트호가 문제가 생긴 것이였다. 다른 우주선들은 긴 꼬리를 수직으로 뻗으며 올라가는 것에 비해 아라라트는 15도 정도 우측으로 기울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먼저 발사한 우주선을 따라잡고 있다는 것이였다.
“쾅!!!!”
거대한 빛덩이가 터져나오고 굉음이 뒤를 이었다. 순식간에 두 대의 우주선이 충돌하여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그 충격으로 가까이에 있던 또 한대의 우주선 역시 연쇄적으로 작은 폭발을 내며 다시 지표면으로 추락을 하기 시작했다.
VIP룸에 있던 사람들은 숨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인류는….”
남작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저런 성취를 이루다니 말입니다.”
우주 엘리베이터 끝에서 발사를 대기하고 있던 플랜트의 창 밖으로 대기권을 벗어나는 수 십대의 우주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남작은 폭발은 아랑곳하지않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우주선들과 그것들이 남겨놓은 궤적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알림음과 함께 모니터에 플랜트의 선장으로부터 영상전화가 왔다.
“발모어 회장님! 방금 폭발로 우주 엘리베이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인가?” 발모어가 당황하며 물었다.
“상층부의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이대로 둔다면 플랜트의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강제로 분리하고, 발진 준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럼 분리하세요.” 발모어가 선장에서 지시했다.
“그게… . 지금도 철수하는 직원들이 몇명 타고 있습니다. 분리하는 과정에서 엘리베이터에 사고가 생긴다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선장이 난감한 듯 말했다.
“몇 명이나?” 발모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폭발로 인해 정확하게 파악은 되지 않습니다.”
“선장! 승객들과 화물은 다 실린 거 맞나요?” 듣고 있던 남작이 불쑥 교신에 끼어들었다.
“네. 완료했습니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내려보내고 빨리 분리하세요.”
남작은 무심하게 말했다. 발모어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띠릿~ 띠릿~”
선장과의 교신이 끊어졌을 때 로버트의 주머니속에 있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남작이 짜증스런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아직도 거기 있습니까? 참.. 여러가지로 소란스런 사람이네요. 밖으로 모시세요.”
로스트는 로버트의 주머니를 뒤져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피터로부터의 전화였다. 화면에는 피터의 웃고있는 사진이 보였다. 로스트가 전화를 끄려할 때, 안정제로 기절한 줄 알았던 로버트가 로스트의 팔을 붙잡고 전화기를 뺏으려 들었다. 로스트는 깜짝 놀랐다. 진정제를 맞은 사람치고는 상당한 힘이였다. 깡마른 로버트의 체격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정신력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저로선 어쩔 수 없군요.”
로스트는 한번 더 안정제를 로버트에게 주입했다. 버둥거리던 로버트는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정중히 모셔라!”
로스트가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부하 둘이 로버트를 들쳐업고 밖으로 나갔다.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발모어는 로스트가 아무렇게나 바닥 던져버린 로버트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부재중 전화 1통 찰스 버닝
발모어는 휴대폰을 들고는 끌려가는 로버트를 따라 VIP룸을 나섰다.
비서가 어디가느냐고 물었지만 발모어는 대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놔두세요.”
남작은 심드렁하게 말을 하고는 엘리베이터가 분리되는 장면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찰스는 로버트의 전화가 그냥 끊겨버리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화를 안받을 로버트가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그때 갑자기 올라가고 있던 엘레베이터가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찰스는 당황스러웠다.
“뭐지?”
찰스가 위쪽을 올려다 보았다.
“쾅!!!”
굉음과 함께 우주 엘리베이터의 중간 부분에서 폭발음이 들려오더니 빠르게 엘리베이터가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폭발로 생긴 화염이 엘리베이터의 기둥을 타고 위쪽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떨어지는 엘리베이터 속에 갇힌 찰스는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었다. 거의 자유낙하로 지상으로 내동댕이쳐진 엘리베이터는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남작은 엘리베이터가 폭파되며 화염이 불기둥이 되어 위로 올라오는 것을 것을 모니터로 보고 있었다. 잠시 지켜보던 그는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며 차분히 말했다.
“회장님이 부재중이라, 제가 출발을 승인하겠습니다. 엑소더스 발진!”
엔진들이 굉음과 파란 불빛을 내며 플랜트를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엘리베이터의 상층부는 연결되어있던 플랜트와 분리되자마자 허무하게 바닥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도넛을 몇 개 쌓아놓은 모양이였던 플랜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운데에 원통같던 기둥들이 길어지면서 도넛 사이의 넓이가 넓어지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로버트의 설계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였다. 몇분이 채 지나지 않아 플랜트는 엘리베이터에 얹혀있을 때보다 몇 배는 커져있었다.
모든 엔진이 점화되고 플랜트가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마지막 우주선이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고 있었다. 플랜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혜성 사마엘을 너무나 가깝고 크게 볼 수 있었다. 과연 저것이 정말 지구에 부딪힐까 실감이 잘 나지 않았지만, 저 아래에 머물러있지 않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였다.
찰스는 폐허가 된 우주 엘리베이터의 잔해속에 파묻혀 있었다. 다리를 움직여보려했지만 골절이 된 건지 몸에 아무런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불에 타는 듯한 고통만이 온몸을 휩싸고 돌고 있었다. 다리를 보려 고개를 들었을 때 찰스는 거대한 파편이 자신의 복부를 관통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침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가 입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찰스는 겨우 손을 들어 그것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내가 한 약속은 못지키겠네….”
고통 때문인지 눈물이 계속 흘렀다. 찰스는 들었던 머리를 털썩 땅에 붙이고 누워있었다. 빛을 내며 사라져가는 플랜트가 연기 속으로 조그맣게 보였다.
“로버트…. 넌 꼭 살아남아서 사람들을 지켜줘….”
찰스는 눈을 감았다. 고통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이 잠시 편안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따뜻하게 부는 사막의 바람만이 느껴질 뿐이였다.
플랜트가 지구를 떠난지 18시간만에 혜성 사마엘은 지구에 당도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지구표면에 비쳐지고 얼마되지 않아 사마엘은 태평양에 부딪혔다. 바다는 전혀 쿠션 역할이 되지 못했다. 충돌 순간 10km에 달하는 지표면이 즉시에 떨어져나갔다. 충격파는 음속의 속도를 넘어 지구 모든 곳에 당도했다. 인간들이 애써 지어놓은 벙커는 이 충격파만으로도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충돌로 발생한 잔해들은 우주공간까지 날아가버렸다가, 중력에 이끌려 다시 맹렬하게 지표면을 두들겼다. 인간이 그동안 세워놓은 모든 것들은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거대한 불폭풍이 지구 전체를 둘러싸버렸고 모든 생명체들이 그 불에 의해 일제히 증발해버렸다. 단 하루였다. 단 하루만에 혜성 사마엘은 지구를 바이러스조차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고 말았다.
지구로부터 떨어진 우주 공간 속, 플랜트에서 이 참혹한 광경을 화면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누구도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수 천개의 깊고 깊은 벙커들 중 몇개는 어쩌면 살아남을 지도 모른다고 잠시 희망을 걸었던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지구의 형체마저 알아 볼수 없게 변하자 모두들 침통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이바니치코프 박사. 당신은 천문학자지요?”
발모어가 천천히 물었다. 이바니치코프가 말없이 끄덕였다.
“천문학자 자격으로 선고를 부탁드립니다.”
발모어가 선장으로부터 받은 메모를 이바니치코프에게 내밀었다. 이바니치코프는 메모에 적혀있는 내용을 마이크에 대고 읽고 시작했다.
“서기 2057년 8월 20일 UTC 18시 32분. 태양계의 제 3행성 지구는 무인 행성임을 공식 선고합니다.”
이바니치코프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플랜트를 비롯한 인접 우주선까지 도달하였다. 지구가 원상회복되어 생명체가 다시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까지는 수만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왔다. 몇 달 아니, 길어야 몇년 후면 혹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탈출’에 성공한 그들에게 주어진 다음 숙제는 ‘생존’이였다.
“생명의 임무는 살아남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남작이 플랜트의 이사회 멤버들을 VIP룸에 모아놓고 말했다.
“우리는 그 임무를 고결하게 수행했습니다.”
그는 의기양양했다. 살아남은 것만으로 충분히 기뻤다.
“오퍼니지 남작님의 공이 컸습니다!”
의사회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회장직은 남작님 같이 책임감이 있는 분이 맡으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옳소! 박수로 남작님의 회장 추대를 결정합시다.”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지못해 박수를 치는 몇몇도 있었지만, 남작은 개의치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그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해보였다. 거대한 플랜트와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이 로트필트 오퍼니지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순간이였다.
격리된 병실에서 약에 취해 자고 있는 로버트는 꿈을 꾸고 있었다. 에덴랩을 막 시작했을 때 단골로 가던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로버트와 찰스는 회사의 비전을 놓고 얘기중이였다.
“넌 왜 그냥 건축을 하지 않는거야?” 찰스가 물었다.
“그냥 건축? 건축이란게 뭐야? 사람이 살 곳이 필요하니까 집을 짓는 거잖아. 하지만 인류가 이제 땅위에서만 사는게 아니라 우주에서도 사니까, 비행기나 우주선이 아니라 집이 필요해. 그러니까 그건 건축가들이 지어야하는 거라구!”
“흠.. 거창한데… 거창하지 않네.”
“좋지?”
“좋아. 세상 사람들도 너한테 이렇게 기분좋게 설득당했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회사의 비전은?”
“인류를 위해 짓는다!”
로버트의 말에 찰스가 환히 웃고 있었다. 웃고 있던 찰스의 얼굴이 차츰 흐려져가고 있었다.
“찰… 찰스….”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로버트가 중얼거렸다. 로버터의 곁을 지키던 발모어가 다가가 로버트의 손을 잡았다.
“로버트! 정신이 좀 드나?”
로버트가 눈을 떠 발모어를 쳐다보았다. 약에 취해 정신이 혼미했지만 금세 상황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사마엘로 인해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사라졌어. 찰스의 일은 정말 유감일세.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네.”
발모어의 말은 전혀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로버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화가 치밀어올라 당장이라도 플랜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우주공간에서 얼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역겨운 사업가들과 조금도 같이 있고 싶지않았다.
“어떤 말로도 절 위로할 수 없을 겁니다.”
로버트는 발모어의 시선을 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좀 쉬게….”
발모어는 힘없는 표정으로 로버트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주고 병실을 떠났다. 로버트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찰스로부터 부재중 전화 표시가 떠 있었다. 맺혀있던 눈물이 주르룩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신된 메일이 있다는 알림이 뜨자 로버트는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찰스로부터 온 메일이였다.
미안해 로버트. 지금 위에서 우리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고 있겠구나. 가족들이 탑승등록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기도 해.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갈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함께 탈출 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께. 그러니 잘 안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마. 행여 탈출을 못하더라도 남겨진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께! 너는 하늘에서, 나는 땅에서
PS. 좀 무섭긴 하다. 곧 봤으면 좋겠구나 친구.
찰스로부터
메일 끝에는 에덴랩의 로고 아래 ‘인류를 위해 짓는다’라는 슬로건이 함께 쓰여져 있었다. 메일을 읽는 로버트는 가슴이 다시 한 번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10대시절부터 함께 꿈을 꾸면 반드시 현실이 될거라며, 언제 어디서든 든든히 로버트의 곁을 지켜주던 찰스는 이제 없었다. 로버트는 이 차가운 우주 공간에 혼자 뚝 떨어지게 된 것이였다. 로버트는 급격하게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잠을 자고 싶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지구에서 다시 깨어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우주는 그 크기만큼 끝없이 어둡고 고요했다. 지구를 탈출해온 우주선들은 이제 각자의 방향을 잡고 자신들만의 머나먼 여정을 떠나려하고 있었다. 더 이상 멀어져 통신이 끊기기전 모든 우주선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마지막으로 전해졌다
“치지직… 치직…
이 교신을 듣는 지구인 여러분. 저는 아케론호의 피터가빈 선장입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인류가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저 푸른 지구가 무참히 부서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어리석게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남은 인류는 또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 끝을 알 수 없는 유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서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들 중 누군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새로운 별을 찾게 된다면 그 곳을 ‘신지구’라 명명하고 서로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보냅시다. 안식처를 찾은 그 기쁨을 외칩시다. 옛날 뱃사람들이 육지를 찾았을 때처럼 ‘세일 호(Sail Ho)’라고 외칩시다. 오래전 아름다운 지구에서 함께 살았던 추억을 간직한 채, 부디 다시 만나길 기원합니다.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