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병기장의 수술대에는 죽은 드래곤의 거대한 머리가 목이 잘린채로 놓여져 있었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색이 조금 바래버린 두피는 두 갈래로 갈라진 채 드래곤의 뇌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뇌에는 분석을 위한 센서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듀발은 드래곤의 머리 위에 떠있는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분석한 드래곤의 뇌신경이 입체적으로 재구현되어있었다. 도벨이 주사기로 드래곤의 뇌에 물질을 주입하자 물질이 뇌신경을 따라 빛을 내면서 흐르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둠의 궁전에서 나온 루흐다의 물질인가?”
듀발이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신지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 클라단이 어둠의 궁전에서 마셨던 지흐하니안의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액체에서 추출한 것이였다. 도벨은 오랜동안 루흐다인들의 기술 문명에 대해 연구를 거듭해 왔었다.
“네. 그렇습니다.” 도벨은 계속 반응 수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루흐다인들은 실로 대단하군.”
듀발이 자세히 다가가 뇌 전체로 퍼져나가는 물질을 보며 말했다.
“알면 알수록 더욱 더 미궁속으로 빠지는 기분이지요.”
도벨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드래곤의 상태 점검을 계속했다. 잠시 후 신경계를 따라 흘러가던 빛이 점점 흐려지더니 이내 확장을 멈추고 말았다. 듀발은 당황스러웠지만 도벨은 짐작했다는 듯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죽어있는 드래곤의 뇌는 여기까지가 한계군요.”
이윽고 빛들이 점점 사라지고, 드래곤의 뇌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뇌세포들이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살이 타는 고약한 냄새가 방안에 퍼지고 있었다.
“역시 실패인가?”
“이 물질은 신경계에 부식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은 사체라 부식이 더 빠르게 일어난 것이고, 살아있는 실험체라면 지금보다는 확연히 더디게 나타날 것입니다. 신경계가 부식하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생존 본능만 남게 되어, 모든 것을 위협으로 인지해 강한 공격성과 폭력성만 띠게 됩니다. 그런 상태라면 부식으로 뇌가 녹아내려서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흠칫 놀라며 묻는 듀발에게 도벨이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하지만 저렇게 바로 뇌가 녹아버려서야….”
듀발은 액체처럼 녹아버린 채 수술대 위에 흥건한 드래곤의 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부식 속도라면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다. 듀발은 고개를 저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도벨이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에는 두 가지 파르가 떠있었다. 처음엔 서로 비슷해보였지만, 도벨이 손가락을 움직여 두 파르를 겹쳐보이자 다른 부분이 색깔로 구분되어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드래곤의 생체 조직과 결합한 파르입니다. 하지만 죽은 사체라 한계가 있습니다.”
도벨이 말했다. 생체 오라를 이용하는 가이아인들의 파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아있는 생명체의 오라를 반응시켜야만 했다. 이미 죽은 생물은 오라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였다.
“이것만 성공한다면 앞으로 가이아의 모든 테이머들이 보다 쉽게 테이밍을 할 수 있겠지.”
듀발이 유심히 파르를 쳐다보고 있을 때, 도벨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시다시피 루드다 문명은 미지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현재 여기까지가 저희 기술의 한계입니다.
그러니 새끼 드래곤을….”
“무슨 말이냐?” 듀발이 도벨의 말에 정색하며 물었다.
“왕자님이 테이밍에 실패할 경우도 생각하셔야지요.”
도벨은 서늘하게 듀발을 쳐다본 후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듀발은 잠시 심각한 고민을 빠졌다. 도벨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길들일 수 없는 야수는 재앙이다. 우리가 드래곤 테이밍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인간에게도 드래곤에게도 그저 재앙일 뿐이다. 재앙의 씨앗은 제거한다. 바로 대장군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제다에게 먼저 희망을 걸어보고 싶군.”
듀발은 도벨의 말을 듣더니 돌아서서 외면하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곧 침샘이 열리고 야수성이 발현되기까지 불과 몇달입니다.
진정 왕자님이 그 안에 테이밍에 성공하실꺼라 보십니까?
대장군님이 실패한 일을, 과연 저 어린 왕자가요?”
도벨은 듀발의 뒤통수에 대고 강하게 따져물었다. 듀발이 고개를 돌리고 도벨을 노려보았다. 도벨은 찔끔했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우리 가이아에게 그것을 기다려줄 시간이 허락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사상 모든 전쟁은 항상 시간과의 싸움이였다. 기습과 방어, 진군과 후퇴, 보급과 지원 등에서의 간발의 시간 차로 인해 전투의 승패가 갈리고, 국가의 흥망성쇠가 갈리곤 했다. 듀발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벨의 말에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드래곤이 가이아의 희망이긴 하였지만, 제다는 더 큰 희망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제다의 방에서 배고픔에 쓰러져있던 드래곤이 음식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깨어났다. 드래곤 앞에는 구운 고기 덩어리와 구운 생선이 놓여져있었다. 제다와 로드리케, 레센느 이 세 사람은 드래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피기는 로드리케가 단단히 안고 있어 음식을 앞에 두고도 군침만 흘릴 뿐이였다. 금방 궁중 바베큐장에서 달려온 터라 세 사람의 얼굴엔 온통 숯검댕이가 잔뜩 묻어있었다. 드래곤은 처음엔 검게된 제다의 얼굴을 몰라보고 경계를 하다가, 한참 지난 후에 제다라는 것을 알게되자 안심을 하고 천천히 고기를 먹어보려 입을 갖다대었다.
“제발….”
제다가 두 손을 모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드래곤이 고기를 한 입 베어물었다. 그러더니 표정이 밝아지며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드래곤이 음식을 싹 먹어치우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며 기뻐했다. 혹시나 음식을 남기지 않을까 기대했던 피기는 전혀 기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레센느가 제다를 보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잘 먹네요. 다행이에요.
왕자님, 왕자님이 이 아이를 두 번이나 살리셨네요.”
로드리케가 우와하고 감탄을 했다. 제다는 머리를 긁적이며 해맑게 웃었다.
“아니에요. 우리 모두 같이 살린거죠! 물론 로드리케도 말이에요!”
“드디어 먹는거야?”
듀발이 방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제다가 듀발에게 달려가 자랑을 늘어놓았다.
“삼촌! 불에 익혀줬더니 이렇게 잘 먹어요!”
“그래서 그런가? 화식을 해서 다른 드래곤보다 두뇌 크기도 더 크고 영리했군. 그래서 테이밍이 잘 되지 않았던거야.”
듀발은 기특하다는 듯 제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제다야 그런 건 어떻게 알게 되었니?” 듀발이 물었다.
“둥지에 가면 뭘 먹었는지 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봤더니 둥지 근처에 먹다 남은 고기랑 생선들이 불에 그을려 있었어요!”
제다는 몸까지 써가면서 신이나서 말을 했다.
“어찌나 꼼꼼하고 열심히 찾아보던지… 드래곤을 아끼는 마음이 정말 굉장하던걸?”
신나게 무용담을 늘어놓는 제다의 옆에서 레센느가 한 마디 거들며 나왔다.
"그 마음이 널 현명하게 하겠구나…."
듀발은 레센느의 말에 제다를 잠시 쳐다보다가 혼자 읍조리듯 말했다. 음식을 다 먹은 드래곤은 기운을 차린 듯 제다 곂에서 삐익삐익 거리며 주위를 맴돌았다. 정신없이 먹어서 그런지 입 주변에 검댕이 묻어있었다. 제다가 드래곤을 가만 보고 있다 번뜩 좋은 생각이 난 듯 소리를 질렀다.
“재투성이, 애쉬!”
다들 갑작스런 말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였다. 제다는 드래곤을 가리키며 힘차게 외쳤다.
“이름요! 제 드래곤이니까 제가 이름을 지어줘야죠!
애쉬! 애쉬라고 부를꺼에요!”
“애쉬라? 멋진 이름인걸요!”
레센느가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받아주었다.
“애쉬래. 재투성이 애쉬. 하하하하”
로드리케가 큰 소리로 웃었다. 지켜보던 듀발은 복잡한 마음에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를 못했다. 제다는 애쉬에게 이름을 계속 불러주며 말을 걸고 있었다.
“애쉬야! 이제부터 넌 애쉬야! 이름이 생겼으니 넌 내 친구란다.”
바티운에서 드래곤 사냥이 있은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제다는 그동안 테이밍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매일매일 수련을 거듭했다. 다른 동물들로 훈련을 해본 결과 테이밍 실력에 어느정도 자신이 붙은 제다는 드디어 드래곤 테이밍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악!”
왕궁 외곽에 마련된 드래곤 사육장에서 제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레센느와 로드리케가 쓰러져있는 제다 곁으로 달려갔다. 제다는 애쉬에게 물린 손을 부여잡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대형견만큼 커진 애쉬가 야수의 본성이 나왔는지 피기를 보며 낮은 소리로 위협을 하고 있었고, 피기는 겁에 질려 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숙모. 이 일은 꼭 비밀로 해주셔야해요. 제가 테이밍 훈련하다 모르고 애쉬 꼬리를 밟아서 애쉬가 놀라서 그런거에요. 제 잘못인데 애쉬가 벌을 받게 할 순 없잖아요.”
치료를 받으러가면서도 제다는 애쉬 걱정을 하고 있었다. 레센느는 제다의 마음을 헤아리고 제다부터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까지 얘기한다면 어쩔 수 없긴 하네.”
“전 정말 괜찮아요. 애쉬는 제게 꼭 마음을 열어줄꺼에요. 우린 친구니까요!”
제다가 레센느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레센느는 제다의 머리를 한없이 쓰다듬어줄 뿐이였다.
며칠이 지난 후, 제다는 애쉬에게 다시 테이밍을 시도하고 있었다. 애쉬는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있었다. 레센느가 제다에게 지난 번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기로 하는 대신, 안전을 위해 애쉬를 묶어야 한다고 제안을 한 것이였다. 제다는 애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테이밍을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다는 정신을 집중하고 애쉬의 눈을 똑바로 보며 테이밍에 들어갔다.
‘애쉬, 부탁이야~ 나에게 마음을 열어줘!’
제다는 테이밍을 하는 동안 애쉬의 머리 속을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빛들이 가득한 곳이였다. 제다는 즐거운 마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띄고 있었다. 애쉬의 머리 속 깊숙한 곳에서 밝게 빛나는 붉은 빛이 보이고 있었다. 저기로 들어간다면 애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다가 그 곳으로 들어가보려고 나아가고 있었을 때, 무언가 뜨겁고 강한 기운이 자신을 밀어내는 것을 느꼈다. 제다는 밀려나지 않으려 더욱 강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그 순간 애쉬의 눈이 번뜩였다. 제다는 갑자기 머리에 몽둥이로 맞은 것 같은 어마어마한 통증을 느끼고 쓰러지고 말았다.
“제다야!”
레센느가 달려와 제다를 안았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제다는 애쉬를 보고 있었지만, 테이밍에서 깨어난 애쉬는 너무나 난폭하게 쇠사슬이 끊어질 듯 발버둥치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쾅쾅 애쉬가 사슬을 잡아당기는 소리와 하악거리는 드래곤의 숨소리만 사육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레센느는 처음으로 애쉬에게서 공포심을 느끼고 말았다. 듀발이 예전에 말했던 재앙이 바로 이런 것일거라고 생각했다.
제다는 자신의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앓고 있었다. 아버지인 누마미스와 어머니인 아나타가 걱정하며 제다를 보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친구 로드리케와 앤리스도 불안한 눈빛으로 제다를 진찰하는 의사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진찰을 마친 의사가 안도하며 말했다.
“테이밍의 반동에서 오는 쇼크입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하시면 괜찮을 것이옵니다. 헌데, 이 정도 반동이라면 테이밍에 거의 성공했을 때나 오는 충격인데,아직 어리셔서 견디지는 못하셨지만 대단하십니다.”
“제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나랑 놀아주지도 않았다구요!”
로드리케가 말했다.
“난 쇼크를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어.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
앤리스가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잘난 척은! 그럼 니가 드래곤을 테이밍하든가!”
로드리케가 무안을 주자 앤리스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덩치가 작은 앤리스는 늘 똑똑한 척을 하곤 했지만, 큰 덩치의 로드리케에겐 매번 꼼짝하지 못했다.
“지금은 건강이 많이 안좋으시니, 당분간만 테이밍을 금하시면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의사의 말을 들은 왕비 아나타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제 그만하자. 제다야.” 아나타가 제다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드래곤은 길들일 수 있는 짐승이 아닌 것 같구나.”
아나타가 제다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나즉히 말했다.
“애… 쉬….”
제다는 애쉬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만 흘릴 뿐이였다.
며칠 뒤 건강을 회복한 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육장을 찾았다. 테이밍을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은 아니였고, 그저 애쉬가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로드리케도 심심하다며 제다를 따라나섰다.
“애쉬야~ 나 왔어.”
제다는 애쉬를 불러보았다. 애쉬는 한동한 혼자 있었는지 풀이 죽어서 쇠사슬 묶인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제다가 계속 불러보았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피기를 보면 나올 지도 몰라!”
로드리케가 안고 있던 피기를 땅에 놓아주었다. 피기는 애쉬에게 곧장 달려가서 평소처럼 장난을 치려고 했다.
“애쉬!!! 안돼!!!”
피기를 본 애쉬가 갑자기 위협적인 소리를 내더니, 날개짓으로 휙 떠올라 피기에게 불을 내뿜어버렸다. 드디어 애쉬의 침샘이 열려 화염을 뿜게 된 것이였다. 제다와 로드리케가 말릴 틈도 없이 피기는 온통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엉엉엉~ 피기야!”
제다가 화염을 뚫고 피기를 건져내왔지만 이미 피기는 죽어있었다. 그것을 본 로드리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제다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울던 로드리케가 화가나서 작대기를 집어들고 애쉬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애쉬는 로르리케에게도 화염을 쏘면서 강하게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제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난폭해져버린 애쉬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사육장 한 곳에 걸린 루드라를 집어 애쉬의 발 밑에 두어발을 쏜 후에야 제다는 간신히 애쉬의 화염을 멈출 수가 있었다.
“로드리케, 듀발 삼촌을 불러와줘!”
화염이 잦아든 애쉬를 붙잡고 제다가 소리쳤다. 겁에 질린 로드리케는 제다의 말에 황급히 사육장을 벗어나 뛰어가버렸다. 제다는 쇠사슬을 애쉬에게 칭칭 감아 조이고는 애쉬를 꽉 끌어 안았다.
“애쉬! 왜 그랬어!!!!”
제다의 눈에는 계속 눈물이 나왔다. 어리지만 여기까지가 애쉬와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제다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피기도 모자라 사람에게 불을 뿜은 드래곤을 절대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슬플 뿐이였다.
“내가 테이밍을 더 잘했어야 됐어…. 내가 미안해….”
제다가 한참 애쉬를 안고 울고 있을 때, 듀발이 다급히 사육장으로 들어왔다. 듀발은 사육장 가운데 불타버린 피기의 시체와, 애쉬를 끌어안고 울고있는 제다를 보고 너무나 놀랐지만, 정신을 퍼뜩 차리고 우선 제다를 당겨와 애쉬에게서 떨어뜨려놓았다. 경황이 없이 뛰어다녔던 로드리케는 돌아와 다시 피기를 보고는 또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피기야… 엉엉!”
“로드리케! 좀 조용히 해주겠니?”
듀발이 애쉬에게 테이밍을 시도하려했다. 로드리케는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끅끅 울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제다는 삼촌이 제발 테이밍을 성공해서 애쉬를 살려주기를 바랄 뿐이였다.
“크아아아!”
테이밍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애쉬가 듀발에게 불을 뿜어버렸다. 듀발이 황급히 물러나 제다를 보며 말했다.
“안되겠다. 제다야. 죽여야돼.”
“그럴 수는 없어요. 애쉬는 제 친구에요. 흑흑”
제다는 눈물을 흘리며 듀발에게 애원했다.
“야! 피기도 내 친구야~ 엉엉~”
로드리케가 제다를 보며 소리쳤다.
“미안하구나 로드리케.”
듀발이 로드리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고, 무릎을 꿇고 제다와 눈높이를 맞추고서는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제다야. 이것이 재앙이다.
똑똑히 보아라. 이제 선택할 시간은 끝났다.”
“제가 테이밍을 할께요! 하면 되잖아요?”
제다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듀발에게 사정을 해보았지만 듀발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삼촌! 네? 네?”
제다가 매달려봤지만 듀발은 차가운 표정으로 경비병에게 명령을 내렸다.
“드래곤을 병기장 지하로 옮겨라!”
제다는 듀발의 그 말에 거의 실신하듯 바닥에 누워버렸다. 눈물은 그치지 않았고, 꽉 쥔 주먹에서는 피가 날 것 같이 아팠지만 제다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테이밍도 제대로 못한 자신이 너무나 미울 따름이였다.
생체 병기장 가운데 우리에 애쉬가 목과 손발이 사슬로 묶인 채 지지대에 단단히 묶여있었다. 행여 화염을 뿜을까 입도 보호대로 단단히 틀어막혀 있었다. 도벨이 우리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주사기로 애쉬의 머리 뒤쪽을 찔러 혈액을 채취하며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줄께. 약속하마.”
도벨은 드래곤의 피가 주사기로 빨려 들어오는 걸 보며 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입이 막히 애쉬가 으르렁대봤지만 도벨은 개의치 않고, 다시 다른 주사기를 꺼내 사정없이 찔러버렸다.
“윽…!”
어느새 몰래 숨어들어온 제다와 앤리스가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제다는 이대로 애쉬가 죽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앤리스를 설득해 생체 병기장에 몰래 숨어든 것이였다. 제다는 피가 뽑히고 있는 애쉬를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잠시 후 채취를 마친 도벨이 드래곤의 혈액을 저장고에 넣고 나가버렸다. 제다는 앤리케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애쉬를 풀어줄테니, 넌 저 약병을 챙겨.”
“약병? 드래곤 피 말야? 뭐하게?”
앤리케가 눈이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시간이 없어. 나중에 알려줄께. 얼른 가자!”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앤리스는 어두워진 병기장 내부를 더듬어 드래곤의 피가 담긴 약병을 찾아 꺼냈다. 한 쪽에서는 제다가 우리에서 애쉬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뭐가 뭔지는 잘 몰랐지만 이래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드래곤이 없어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왕궁은 일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가이아의 대장군 듀발, 아스테를 뵈옵니다.”
듀발이 왼쪽 가슴에 주먹을 대고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목례를 하며 인사했다.
“드래곤을 놓쳐버렸다고?”
누마미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듀발은 다시 한번 아스테를 볼 면목이 없었다. 도벨에게 드래곤을 맡긴 후에 쥐도 새도 모르게 드래곤이 사라져버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도벨을 보면서 듀발은 도벨의 짓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범인은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드래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도망쳤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요?”
프라하스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서며 듀발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틀림없이 단단히 드래곤을 단속했습니다.”
듀발의 뒤에 있던 도벨이 사색이 되어 엎드리며 말했다. 프라하스는 어떻게든 듀발의 책임으로 몰아가고 싶었으나 딱히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대전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로드리케가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를 병사들이 황급히 쫒아 들어왔다. 로드리케는 아스테를 보자마자 멈추어 서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제다가 그랬다고요! 드래곤을 풀어줬다니까요!”
로드리케가 아스테를 보고 외쳤다. 아스테와 듀발은 놀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프라하스가 나서 물었다.
“정말이냐? 너희들은 친구가 아니였더냐?”
“애쉬 때문에 우리 피기가 죽었어요! 그 드래곤 녀석도 잡아 죽여야 되요!”
로드리케가 분노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제다 왕자를 잡아오세요.”
아스테가 말했다. 병사들이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