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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face
2021년 12월 21일

시즌1. 8. 구원자

게시판: Three Kingdoms 소설

탈출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러시아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도 178대의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러시아는 혜성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바람에 탈출 준비가 늦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 못지않은 우주항공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고, 냉전시대의 산물로 보유하고 있던 수백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주선 발사체로 재활용하는 ‘파베크’ 프로젝트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3년안에 수백대의 우주선을 우주로 쏘아올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우주선의 건조를 위한 막대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나라와 손을 잡아야만 했다.


러시아는 당연히 EU와 협상을 시작했다. 유럽의 자금력이라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럽을 설득하는데 집중했지만, 유럽은 예상을 깨고 미국의 베데스타 유니버셜을 선택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미국의 기술력을 믿고 있었다. 다급해진 러시아는 중동과 아프리카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우주선의 판매를 제안했다. 사실 중동과 아프리카 역시 미국쪽으로 마음이 거의 기울고 있었다. 러시아는 미국이 부르는 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거기에 세계적인 석학인 요한 오로비스 박사를 내세워 그들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원하는 숫자만큼의 우주선을 가질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만 우주선만 가질 수 있었다. 총 178대 중 70%가 넘는 125대의 우주선은 단지 러시아 승무원들만 탑승하는 외국인을 위한 우주선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오로비스 박사가 설계한 생명유지 장치와 생태순환 시스템은 제작이 너무나 복잡하고 까다로와서 62대의 중형이상의 우주선에만 적용되었다. 정작 러시아 자국민들을 위한 급조된 소형 우주선은 그저 탈출만을 목적으로 단순하게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거기라도 탈 수 있는 사람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는 과거의 영광을 우주에서나마 재현하고자 지휘층을 태운 몇 대의 기함급 우주선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위치와 재력이 아닌, 철저하게 실력과 신체능력 위주로 자국민을 선발하여 우주선에 탑승시켰다. 더 나아가 탑승 연령 제한을 20세 이하로만 실시하기도 했다. 만약 유랑이 수십년에 걸쳐 오래 지속된다면, 러시아 선단을 이끄는 핵심은 바로 젊은 그들이 될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20년만 지난다면 젊은 러시아인들이 늙어빠진 인력들로 구성된 타국의 우주선들을 제압하고 우주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이 ‘파베크’프로젝트의 또 다른 목적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러시아 자국민들이 탄 우주선 탑승객은 지휘관을 제외한 대부분이 어린 소년, 소녀들로 구성되었다. 비밀리에 군사용 무기가 우주선마다 탑재되었고, 탑승 직전까지 그들에게는 혹독한 군사 훈련이 실시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러시아의 비극으로 돌아오게 될지는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러시아의 기함 아케론호의 선장 피터 가빈은 최근 너무나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때, 수백번의 우주비행 경력과 우주 체류기록을 갱신하며 NASA 최고의 파일럿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한 그였다. 화려한 현역생활을 마치고 은퇴후, 지구에서 교관으로 지내던 그에게 러시아가 ‘파베크’ 프로젝트의 수석조종사로 현역 복귀를 제안했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는 다시 우주로 나가고 싶었다. 인류를 구원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쓰고 싶었다. 나이가 들긴 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뛰어난 조종실력과 지휘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러시아로 기꺼이 건너가 아케론호를 타게된 것이였다. 또한 가빈은 발사 직전까지 러시아의 어린 소년, 소녀들의 교육에도 참여했다. 가빈은 짧은 시간동안 그들을 트레이닝시키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했다. 비록 미국인이였지만, 가빈은 그 공로로 러시아의 국민영웅의 대접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지구를 탈출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총 178대의 우주선이 발사되었지만, 대기권을 무사히 탈출한 우주선은 102대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 혜성의 충돌에 휘말려 파괴거나 내부고장으로 인해 실종된 우주선도 수십대로 추정되었다. 어린 승무원들의 경험 미숙과 판단착오가 그 원인이였다. 지구를 떠난지 6개월 남짓 지났지만, 제대로 연락이 되고 위치가 파악되는 우주선은 고작 30여대에 불과했다. 눈앞에서 다른 우주선이 폭파되거나 파괴되는 장면도 여러번 보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우주선으로부터 날아오는 조난신호는 아무리 베테랑인 그라고 해도 차마 견뎌내기가 힘들 지경이였다.


“또 조난신호가 들어옵니다.”


항해사인 데런 커쇼가 말했다. 커쇼는 가빈이 직접 미국에서 데려온 인물이였다. NASA 신입 때부터 눈여겨본 인재였다. ‘파베크’ 프로젝트에 적임자라고 판단하여 베데스타 유니버셜로 가려던 것을 억지로 모셔온 것이였다.


“수신하게….”


“채널을 열겠습니다.”


“헉…. 헉… 여긴 네브카드호. 살려주세요. S.O.S!”


채널을 열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에서 흘러나왔다.


“여긴 아케론! 네브카드호 귀하의 직책과 이름을 알려주기 바란다.”


“여긴 네브카드호 제발 살려주세요.”


이 쪽의 무전을 듣지못했지는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여기는 아케론! 누구인지 밝히시오.”


“오! 신이시여! 들립니까? 저는 네브카드 호의 선장 율리시스 웰입니다.”


“네! 캡틴 웰, 위치와 피해상황을 알려주세요.”


“여긴.. 어디냐면…. 아아 항법장치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군요.


산소발생기 외에 다른 장치들은 모두 꺼버렸습니다.


어제 토성을 지나왔는데, 여긴 죽음의 바다같아요….


살아있는 우주선이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데런, 위치를 알 수 있나?”


가빈은 무전을 잠시 끊으며 재촉하듯 물었다.


“수신된 위치로 보아… 약 40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 커쇼가 확신이 없는 듯 말했다.


“9시간 정도 걸리겠군….”


가빈은 항로를 보며 골똘하게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공기가 부족합니다. 충돌로 선체가 부서졌고… 공기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겁을 먹고… 공기가 없습니다. 선체가 기울어서….”


율리시스 웰은 제 정신이 아닌듯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팬도럼일 수도 있는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커쇼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궤도이상증후군이라….”


가빈은 율리시스 웰의 상태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의 말대로 우주선에 물리적 손상이 생겨 산소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면 지금 네브카드호의 승무원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단순한 정신착란이 아닌 실제적 공포에 더 가까울 것이다.


“산소와 물, 식량을 나눠써야하고…. 저희 함선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장님! 다른 방주들은 구조 신호 자체를 스캔하지 않습니다. 고려해주십시오.”


커쇼가 말했다. 지구를 떠나온 이후 모두들 우주선을 ‘방주’라고 부르고 있었다. 사실 방주나 다름없었다. 사람들과 물자 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유전자 표본까지 몽땅 태우고 새로운 땅을 찾아나섰지 않았던가. 아케론호는 이미 몇기 방주들과 가까이에서 항해를 하고 있었다. 가빈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리를 유지하라고 다른 방주들에게 지시하였다. ‘절대 떨어지지 말 것!’ 이것이 선단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이제 우리는 지구라는 안전한 울타리가 없어진 어린 양과 같은 처지일세. 우주는 항상 우리를 노리고 있지. 그렇기에 같은 처지라면 더욱 구해내야 하지 않겠나? 같은 인류라면 말이야.”


조종실엔 일순 정적이 흘렀다. 커쇼가 결심한 듯 대답했다.


“네. 출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선장님!”


“네브카드호! 남은 공기는… 아니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헉헉… 이제 12시간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율리시스 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12시간!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버텨보세요. 우리가 갑니다.”


가빈은 무전을 끊었다.


“위치까지 9시간. 살릴 수 있다.


아케론호와 인근 방주들에게 명한다. 구조신호 지점으로 전속력 발진!”


조종실의 승무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빈은 생각했다. 어차피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딱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면, 지금은 인간에게 향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한 대의 방주라도 더 모으는 것이 인류를 위한 길이자 목적지라고 생각했다.



한편, 플랜트는 이바니치코프의 관측에 따라 지구 궤도를 벗어나 태양계 외각으로 향하고 있었다. 발모어는 지구를 떠난 그 날부터 로버트를 줄곧 찾고 있었다. 친구 찰스를 잃은 분노와 좌절로 인해 병실을 박차고 나가버린 로버트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였다. 보안을 맡고 있는 로스트에게 별도로 로버트를 찾아보라고 지시를 했지만 넓디 넓은 플랜트에서 로버트 한 사람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수 만명이 타고 있는 플랜트에는 많은 공간이 존재했다. VIP들이 머무르는 최고급 시설부터 승무원들의 숙소과 일반 승객들과 노동자들의 단체수용시설까지 다양한 생활공간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각종 생산시설과 연구시설, 편의시설과 창고, 발전소 등등이 복잡한 도로와 연결되어 있어 우주선이라기보다는 소도시에 가깝다고 보는 게 나았다. 그렇기에 사람이 일일이 수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각 공간은 격벽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출입을 위해서는 별도의 아이디카드가 필요했다. 플랜트의 치안은 출입통제만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남작이 주도하는 이사회는 한 공간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위층들은 문제를 일으킬 일이 없었고, 하위층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워봤자 자연스럽게 힘의 논리나 경제논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공간을 넘어다니는 사람들만 잘 관리한다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로버트가 갖고 있는 아이디 카드는 플랜트의 모든 곳을 다닐 수 있다는 점이였다.


플랜트의 건조과정에서 이곳저곳 불시에 다녀보고 진척상황을 몰래 점검해보겠다는 취지에서 로버트는 자신의 아이디카드를 만능키로 만들었다. 이 카드는 출입기록도 전혀 남기지 않았다. 이 넓은 플랜트에서 단 한사람, 로버트만이 귀신처럼 플랜트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된 것이였다.


로스트 대령은 아주 충실한 사람이였다. 그와 그의 팀원들은 밤낮으로 로버트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곳곳에 정보원들을 풀어 로버트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결국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D239 섹터에서 그를 찾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발모어는 로스트의 안내를 받으며 D239 섹터로 향했다. 고속전기카트를 타고도 꽤나 오랜시간이 지나 섹터의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VIP공간에만 거주하고 있던 그들은 D239 섹터의 참담한 모습에 적잖히 당황하고 말았다. D239섹터의 주민들은 플랜트의 노동자 중에서도 최하위층의 노동자들이였다. 처음 탑승했을 때만 해도 그들은 지구에서는 전재산을 들여 거액의 탑승권을 구매한 사회 중산층들이였다. 하지만 곧 그들은 살인적인 플랜트의 생활 물가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지구에서의 1년치 생활비가 여기서는 한달을 버티지 못했다. 플랜트에서 직업을 갖고 있어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정식 승무원들보다 더 급속도로 가난해진 그들은 자신의 숙소를 팔 수 밖에 없었고,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머물 수 있는 이곳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정식 승무원들 대신 청소나 폐기물처리, 위험한 작업 등을 맡아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마저의 일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플랜트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배급되는 기본 생명유지 식량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구에서 각자 가져온 물품들이 암시장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암시장은 최하층 노동자 구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옷이나 생필품, 약품 등이 주로 거래되었으며 이런 암거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다보니, 범죄 또한 급속도로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사회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였다. 플랜트에도 지구의 여느 도시처럼 빈민가가 생겨나게 된 것이였다. D239섹터는 마치 부두의 컨테이너 야적장처럼 직사각형의 집들이 수십층으로 쌓여져있었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좁은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쓰레기와 생활용품들이 구분없이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토레다비드에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정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로스트에게 악수를 청했다. 언젠가부터 D230 부터 D250에 이르는 최하층 섹터를 사람들은 ‘토레다비드’라고 불렀다. 베네주얼라의 고층 빈민가 이름을 딴 이곳은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않아 냉기만이 가득했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집안에서 담요만 뒤집어 쓰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거대한 공간은 불빛은 커녕 사람의 온기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발모어와 이바니치코프는 살짝 공포심마저 들었다.


“여기서 부터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셔야합니다.”


정보원이 앞장서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끝나는 상층부 지붕에는 사람들이 임시로 쌓아올린 가건물들이 더 존재했다. 사다리를 타고 몇 층 정도 더 올라간 이후에야 정보원은 멈춰섰다.


“여깁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가장 구석에 있는 조잡한 재활용 철재를 엮아 만든 문이 있는 집이였다. 문은 닫혀있었다.


“수고했어.”


로스트가 돈을 건네자 정보원은 바쁘게 자리를 떠났다.


“로버트, 거기 있나? 나 피터일세.”


발모어가 문을 두드리며 말을 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문 좀 열어보게나! 거기 있는거 알고 왔네.”


“꺼져! 꺼지라구.”


한참 후에 로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을 사정해봤지만 결과는 꺼지라는 말 뿐이였다. 발모어는 발걸음을 돌기기로 했다. 생사라도 확인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술 놓고 가네.”


발모어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바니치코프가 위스키 한병을 문앞에 두었다. 다시 사다리로 내려가는 길 앞에서 이바니치코프가 슬쩍 돌아보니, 살짝 열린 문틈에서 깡마른 손이 나와 두었던 술병을 가져가고 있었다.


“난파선? 이반, 진짜야?”


돌아가던 이바니치코프 뒤로 로버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 로버트가 술병을 들고 서있었다. 술병에는 메모가 붙어있었다. 이바니치코프가 써서 붙여놓은 것이였다.


“거기 써져있잖아. ”


이바니치코프가 대답하자, 로버트가 다가왔다. 살이 많이 빠져있었지만 눈빛은 아직 살아있었다.


“돌아갈거야?”


이바니치코프의 질문에 로버트는 묵묵히 앞서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바니치코프는 로버트가 거기 있는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암시장에서 술을 사던 이바니치코프는 거의 폐인이 되어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 로버트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었다는 점과, 그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만 당했다는 공통점이 두 사람을 통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자주 이바니치코프는 로버트를 찾아 서로를 위로하며 지냈다. 하지만 이바니치코프는 발모어에게 로버트의 행방을 끝까지 얘기하지는 않았던 것이였다. 로버트가 스스로 나타나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였다.


베데스타 유니버셜의 플랜트와 우주선들은 상당히 안정적인 항해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다른 나라의 우주선들이였다. 러시아나 중국쪽과도 손을 잡지 못한 일부 국가들은 국민들의 폭동을 막기 위해 우주선을 급조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 민간기업의 기술을 사들여 만든 그들의 우주선은 조악했고 비좁았다. 절반 이상의 우주선이 대기권도 벗어나지 못하고 추락했으며, 그나마 우주로 나가 혜성 충돌을 피한 우주선들은 태양계를 벗어나 멀리 운항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며 우주공간을 둥둥 떠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바니치코프는 이러한 난파선들의 구조신호를 감지하였다. 너무나 그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바니치코프는 플랜트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남작과 발모어를 비롯한 이사회를 움직여서 사람들을 구하려면 로버트가 필요했다. 적어도 로버트는 플랜트에서 여전히 중요한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발모어가 로버트를 찾아냈을 때, 슬며시 쪽지를 통해 난파선에 대한 사실을 로버트에게 알려주었던 것이였다. 로버트라면 틀림없이 난파선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로버트는 그런 믿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돌아와서 구조신호를 직접 확인한 후, 이사회에 즉각적인 난파선 구조를 요구했다.


“친애하는 버튼 박사님. 인도주의적인 입장은 이해하지만, 대규모의 난민들을 구조할 경우, 거주 공간이 부족해지면 어떻게 하지요?”


남작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공간 문제라면 아직 접혀있는 공간들을 펼친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여유공간을 10%이상 남겨두고 설계를 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돌아온 로버트가 설득을 시작했다. 설계자인 로버트가 하는 말은 이사회 임원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공기나 식량이 부족하여 자칫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발생할까 우려가 되는군요. 이 우주선이 누구의 자본으로 건조되었는지 상기하길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의 마지막 자신을 침범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어요.”


남작의 말에 로버트는 또 다시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설득과 타협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발모어에게 이사회 전에 말했었다. 이렇게된 바에는 저질러버리는게 나을 것 같았다.


“너희들 욕심 따윈 상관없어! 어떻게든 플랜트를 움직여 우주선을 도킹시킬테니까!”


로버트가 소리쳤다. 남작은 로버트가 혹시 플랜트의 항해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는 있는 백도어라도 만들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로스트 대령!”


남작이 로스트를 부르자 무장한 병사들이 회의실로 밀려들어왔다. 미리 약속된 것이였다. 로버트가 없어지면 큰 문제이긴 하나 방해가 된다면 무력으로 진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만해요! 만약 버튼 박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항해 데이터를 모두 지워버릴 겁니다. 이 우주에서 미아가 되고 싶진 않으시겠죠?”


이바니치코프가 로버트를 보호하며 외쳤다.


“잠깐! 로트필드 오퍼니지경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합시다. 대령, 버튼박사와 이바니치코프 박사를 모시고 잠깐 나가있으세요.”


발모어가 로버트 쪽을 보고 침착하라는 눈짓을 보였다. 회의실을 나온 세 사람은 잠시 밖에 서있었다.


“대령, 저들은 구해야합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에요. 제발 도와주세요.”


로버트가 로스트를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존경하는 두 분 박사님. 전 명령에 따를 뿐,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는 그곳에 어느새인가 이바니치코프의 딸인 안나가 와있었다. 안나는 평소 친절하게 대해주던 로스트에게 다가가 그의 팔소매를 당겼다. 로스트는 안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함께 있던 사람들 역시 안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감이 가득했던 공간에 잠깐의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난파선에도 분명히 안나같은 아이들이 있을겁니다.”


로버트가 차분하게 말했다.


“로버트, 피터를 믿고 기다려보자구.”


이바니치코프가 로버트를 달래며 말했다.


한시간 쯤 후 회의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사회 임원들의 얼굴은 어딘가 무척 흡족한 표정이였다.


“더 좋은 방침을 마련했습니다.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되는 방법이지요.”


남작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들의 우주선을 우리 플랜트와 도킹시키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정말이요?”


로버트는 믿을 수 없었다. 발모어가 무슨 말로 저들을 설득을 했을까 궁금했다. 남작은 로버트를 잠시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들에게 식량이나, 에너지, 우리 플랜트의 시설을 제공해도 좋습니다. 단, 그들은 우리에게 플랜트 사용료를 지불해야합니다.”


“허!”


로버트가 짧은 탄식을 했다.


“여기가 아무리 우주라도 우리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입니다. 당연히 투자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남작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로버트 제발….'


발모어가 간절한 표정으로 로버트와 눈을 맞췄다. 로버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겠어요.”


로버트의 대답이 마침내 떨어지자 이바니치코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참!” 나가려던 남작이 돌아보며 말을 건냈다.


“그들 중에 요리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싸게 채용을 하겠습니다.”


로버트는 이것이 발모어 회장의 작품임을 깨달았다. 일단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사람이 먼저였다. 비록 생명을 구해주는 대가로 사용료를 받는다는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발모어가 힘들게 협상을 이끌어내었는데 그걸 깨뜨려서 하나뿐인 아군을 굳이 잃고 싶지는 않았다. 이사회의 승인이 떨어지지마자 로버트는 플랜트를 직접 조작해 난파선들에게 도킹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도킹된 우주선들의 사람들을 구출했다. 구출된 사람들은 플랜트의 거주시설에 임시로 수용되었다.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이바니치코프와 로버트는 한 대의 우주선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통신기에 매달렸다.


남작의 바람대로 난파선에는 공교롭게도 미슐랭 3성급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요리사가 타있었다. 남작은 크게 기뻐하며 큰 파티를 열었다. 파티에 마지못해 참석한 로버트는 오퍼니지의 VIP존 안에 있는 성을 보고 아연 실색했다. 또한 그 성안의 화려한 인테리어와 남작이 마련해놓은 저녁식사를 보며 놀라움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지구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진기한 식재료들로 만든 요리였다. 이 많은 식재료들과 고급 술들을 언제 따로 다 실어놓았는지 기가막힐 뿐이였다. 사람들 대신 이런 성과 그의 재산들, 그리고 술과 음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로버트는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와인 몇 박스만 덜 실었어도 찰스와 그 가족들은 지금쯤 플랜트에 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물만 나올 뿐이였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복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자구.”


이바니치코프가 분노에 떨고 있는 로버트를 위로하며 다독였다. 플랜트 선단이 완전히 태양계를 벗어낫을 때는 선단의 우주선 숫자는 백여대에 달하는 거대한 선단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이 선단을 ‘엑소더스 선단’이라고 불렀다. 태양계를 벗어난 기념으로 이사회는 공식적으로 이 이름을 받아들였다. 선단의 모든 우주선들은 이제 엑소더스라는 이름을 새기고 운명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선단은 태양계 넘어 멀리 떨어진 소행성 지대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묻혀있는 자원들만이 향후 선단의 미래를 약속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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