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의 방주가 추락할 때 생긴 충격과 폭발이 매우 세긴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가이아 사람들은 이곳의 행성에 깃들어 있는 신이 우주에서 떠돌던 사람들을 불쌍히 여거 여기로 데려오고 보살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불시착한 곳은 지구의 기아나 고원같은 높게 솟은 산위에 넓고 평평한 곳이였다. 고원 아래에는 구름에 쌓여있어 고원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땅에서 떨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닥에는 풀이 나있었지만 꽤나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얼음이 얼지 않아 인간들이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날씨였다. 고원의 맨끝에는 유리처럼 반짝이는 절벽이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신호를 보내기 위해 만든 반사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방주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안개속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절벽에서 반사된 빛을 극적으로 보았기 때문이였다. 사람들은 그 절벽을 ‘거울암벽’이라 부르며 가이아의 은총이라고 말했다. 착륙으로 인한 폭발로 가이아가 생태 기능을 상실하자, 사람들은 방주에서 더 이상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낯선 땅이 두렵기는 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탐사대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 곳으로 오자고 한 건 나니까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누마미스가 아스테라 대수도사에게 말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클라단도 손을 들었다.
“방주에 있는 모든 책들을 읽은 클라단이라면 충분히 탐사에 도움이 될 것 같군요.”
누마미스가 웃으며 말했다.
“생물과 농사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아가레스족만 보낼 수 없습니다.
평생 우주선만 몰던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오로바스를 대표해서 저도 가겠습니다.”
듀발이 큰 소리로 말하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저도요!”
호기심 많은 네론이 번쩍 손을 들었다. 그는 땅에 닿을때부터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했었다. 듀발이 못마땅한 듯 네론쪽을 돌아보았지만, 네론은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였다.
“혹시 누군가 다칠 수도 있으니 의사인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아나타가 말했다. 뒤따라 몇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나도 함께 가겠네. 가이아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노령이였지만 아스테라는 탐사대를 이끌기로 했다. 대수도사로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그의 소임을 다해야만 했다. 그는 출발에 앞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탐사대는 무장을 하고 간단하게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과 식량을 챙겨 방주를 나섰다. 방주에 있는 장비와 물자에 이 곳에 있는 자원들이라면 충분히 정착생활이 가능해보였다. 집을 지을 수 있는 터와 물이 흐르는 곳을 우선 찾아야했다. 고원 끝에 있는 거울암벽 근처로 가서 아래쪽으로 강이 있는지 부터 확인해야했다.
방주를 떠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탐사대는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다.
“저건 대체 뭐지? 호수인가? 빨갛게 빛이 나는 것도 있는 것 같아.”
주변을 보던 클라단이 가리킨 곳은 고원의 초원쪽이였는데, 일핏 보면 검은 물결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호수가 아니야.”
누마미스는 어느덧 망원경을 꺼내 살려보고 있었다. 물결처럼 보이는 것은 떼를 지어 다니는 검은 털을 지닌 동물들의 무리였다. 지구의 늑대처럼 보이는 괴물들은 빨갛게 빚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던 괴물들이 갑자기 탐사대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도망쳐!!!”
망원경을 보던 누마미스가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머지 탐사대원들도 뒤늦게 알아채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행성에 동물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였지만, 그것들은 결코 사람들에게 우호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온통 검은털로 뒤덮힌 채 붉은 안광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괴물들의 모습에 탐사대는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것들의 숫자였다. 리더가 있는 것인지 냄새를 맡고 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괴물들은 끝을 알 수도 없을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탐사대를 쫒아 오고 있었다. 총을 뽑아서 싸워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암벽 쪽으로!!! 저기 피할 곳이 있는 것 같에!”
뒤에 쳐져서 달리고 있던 아스테라가 외쳤다.
암벽 아래에 좁은 동굴 입구가 보였다. 너나 할 것 없이 그들은 일단 그곳으로 뛰어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듀발이 입구를 막을 무언가를 정신없이 찾기 시작했다. 누마미스는 불이라도 피워서 괴물들을 쫒아내야겠다고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깐! 여기까지는 못 들어오는 것 같아.” 클라단이 말했다.
동굴의 입구가 뚫려있었지만 다행히 괴물들은 따라 들어오지 않고 입구 앞에 멈춰서 기분나쁜 소리로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이였다. 동굴 앞은 진을 치고 있는 수백마리의 괴물들로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왠지 여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네론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나갈 수는 없으니, 더 들어가보는 수 밖엔 없겠군.”
누마미스는 가방에서 랜턴을 꺼냈다.
“저 놈들이 겁을 내는 걸 보면, 안에는 훨씬 더 위험한 게 있는건 아닐까?”
아나타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어차피 진퇴양난이니, 내려 가보는게 좋겠네.”
아스테라가 앞장서서 출발하기 시작했다. 동굴을 따라 지하로 들어간 탐사대는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좁았던 동굴의 통로가 오르막으로 바뀌었다. 그 끝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뒤쳐져 있던 네론이 후다닥 그 곳으로 달려가보더니 놀라 우뚝 멈취 서버렸다.
“오! 가이아시여….”
뒤따라온 에스테라가 탄식을 했다. 모두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 입을 벌리고 쳐다볼 뿐이였다. 그들이 서있는 아래 쪽으로 땅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방주에 타고 있던 가이아인들이 모두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분명히 과거에 어떤 지적 생명체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 틀림없었다. 어디선가 들어온 빛으로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는 그 곳은 마치 오랜 세월동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고대의 궁전 같네. 한 번 내려가보자!”
누마미스가 침묵을 깨고 재촉했다. 탐사대가 가까이 내려가보니, 궁전처럼 보이는 그 곳은 이미 오래전에 폐허로 변해버려 낡을대로 낡아 있었다. 벽에는 틈틈히 자라온 식물들의 줄기가 감싸있어서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저기가 문인가봐.” 네론이 붉은 색 입구를 가리켰다.
탐사대는 입구를 지나 건물의 중앙홀로 추측되는 곳으로 이동을 해보았다. 벽에는 알수 없는 모양의 장식들이 새겨져 있었고, 최소 수십미터가 되어보이는 높은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입구부터 반대 쪽 끝까지 페르시안 양탄자럼 보이는 길이 길게 나있었다. 따라갈수록 오래된 길의 무늬가 점점 새것처럼 색깔이 선명해지는 신기한 길이였다.
“이 쪽으로 계속 가볼까?”
클라단은 길의 끝이 궁금해졌다.
“괴물들이 들어올 지도 모르니, 우리는 여기서 아스테라님을 모시고 입구를 지키고 있겠다.”
듀발이 무기를 꺼내며 말했다.
“좋아. 누마미스 나와 함께 가자.”
클라단이 말하자 누마미스가 움직였다.
“나도 갈께!” 네론이 얼른 따라붙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알리게.”
아스테라가 말했다. 그는 그동안의 강행군으로 다소 지친 기운이 역력했다.
“쉬고 계십시오.”
누마미스와 클라단, 네론이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밟는 곳 주변만 길의 무늬가 밝아지고 있어 마치 조명이 그들을 인도하는 것 처럼 보였다. 길은 계속 이어져 결국 지하에 있는 깊은 곳까지 이어졌다. 그들은 어느덧 은밀한 공간처럼 보이는 방에 도착했다. 그 곳은 매일 누군가가 와서 치워놓은 것 같이 먼지하나 없이 깨끗했다. 천장에는 커다란 수정석이 은은하게 빛을 내며 밝혀주고 있었다. 방 가운데는 대리석으로 된 직육면체의 석재 구조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만 이게 관처럼 보이는 건가?”
누마미스가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보여. 여기 술잔도 놓여져있네.” 네론이 말했다.
술잔에는 와인처럼 보이는 액체가 따라져있었다. 방금 누군가가 따라놓은 것 같이 신선해보이기까지 했다.
“여기는 누군가의 무덤이고, 술잔은 그를 추모하려는 것 같아.”
클라단은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지구의 대리석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누가봐도 관처럼 보였다. 이게 만약 관이라면, 반드시 어딘가 그 주인의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좀 살펴보자! 뭔가 이곳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클라단이 말했다. 누마미스는 클라단과 함께 석관을 빙빙 돌며 특이한 것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네론은 석관앞에 놓여진 술잔을 보고 있었다. 방 안이 밖과는 다르게 좀 덥다고 느껴졌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나서 술잔을 집어 들었다. 튤립처럼 생긴 유리잔에는 붉은 액체가 넘실대고 있었다. 잔을 돌릴 때마다 상큼한 과일향과 달콤한 꽃향기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네론은 그 아름다운 빛깔과 매혹적인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네론! 뭘하는 거야!”
석관 뚜껑을 보고 있던 누마미스는 술을 마시려는 네론을 발견했다. 가까이에 클라단이 있었지만, 말릴 틈도 없이 네론은 술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말았다.
“이 멍청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누마미스가 네론에게 달려갔다. 그때였다. 방의 문이 쿵 하고 닫겼다. 클라단이 놀라 달려가보았지만 문은 어떠한 힘에 의해 열리지 않았다. 석관에서 천천히 안개와 같은 보라색 기운이 흘러나와 네론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네론은 작은 토네이도 폭풍속에 들어있는 형상이 되었다. 잠시후 보랏빛 기운이 네온의 몸속에 완전히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누마미스와 클라단은 네론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이봐 네론, 괜찮은거야? 눈을 좀 떠봐!”
네온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채 조금 빨갛게 변해있었다.
“네론! 네론! 정신 차려봐!”
누마미스가 네온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네론이 누마미스를 노려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네론의 것이 아니였다. 더 낮고 깊은 음성이였다.
“너희들은 누구냐?”
목소리를 들자마자 클라단과 누마미스는 공포심이 들었다. 단지 목소리가 바뀐 탓은 아니였다. 미지의 기운에 의해 다른 사람이 그의 몸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린 지구라는 별에서 온 가이아인들입니다.. 우주를 유랑하는 중 이 행성으로 끌려왔고, 불시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눈이 빨간 괴물들이 끝없이 몰려와서 이 곳으로 몸을 피하게 된 것겁니다..”
누마미스가 대답을 했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누마미스를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였다.
“당신은 누굽니까? 그리고 어떻게 네론의 몸속에 들어가게 된겁니까?”
누마미스가 물었다. 그러자 네론의 몸에 있는 누군가가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가이아? 그것이 나의 새로운 백성들의 이름인가….
나는 루흐다 문명의 마지막 왕 지르하니안이다.
우리는 원래 기로 이루어진 종족이라 우리의 형질을 받아들이면 어느 몸이든 깃들 수 있다.”
“백성?”
클라단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누마미스가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우리의 문명과 영생까지 주겠노라.”
네론의 몸안에 깃든 지르하니안이 말했다. 누마미스는 계속 지르하니안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영생? 정말입니까?”
“그렇다. 그것은 틸레가 주는 선물이다.”
“틸레? 그것은 무엇입니까?” 클라단이 끼어들며 물었다.
“이 곳의 주인인 나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살아 남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명이 필요한 것이지.”
“그럼 저 밖에 있는 괴물들을 막아낼 수 있나요?”
“그렇다. 그대들은 마가들이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마가? 아….”
누마미스와 클라단은 그 괴물들이 ‘마가’라고 불리운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너희도 저 잔을 마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는 거지.”
“네론처럼 육체를 바쳐야한다는 건가요?”
클라단이 물었다.
“바치라는 것이 아니다. 불사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 자유로와지자는 것이다.”
지르하니안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그때 갑자기 클라단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미쳤군. 그렇게 불사의 힘이 있다면, 왜 너희 종족은 여기 없는거지? 게다가 미안하게도 난 이미 자유롭거든?”
지르하니안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너희는 선택받은 것이다! 모르겠나? 이것이 너희들의 운명이다!”
“우리들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해.”
클라단이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지르하니안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오른 손을 높게 쳐들었다. 그의 뒤로 수십개의 빨간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마가들이었다.
어느새 나타난 마가들은 삽시간에 누마미스와 클라단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역시 모두 거짓이였어. 저자가 마가들을 조종하는게 틀림없어.”
클라단이 총을 뽑으며 말했다. 누마미스도 총을 뽑았다.
“그래 내가 마가들을 만들었지. 그러니 받아들여라!”
지르하니안이 들고 있던 손을 뻗자 마가들이 클라단과 누마미스에게 달려들었다. 클라단과 누마미스는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맨 앞 줄에 있던 마가들이 총을 맞고 쓰러졌지만 뒤에 있던 마가들은 쓰러진 마가를 밟으며 전진해오고 있었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그들이 마가들을 향해 정신없이 총을 갈겨대고 있을 때 지르하니안이 다른 손을 뻗었다. 그러자 천장의 수정석에서 광선이 발사되어 누마미스의 어깨를 관통했다. 광선에 맞은 누마미스는 비명을 지르며 총을 놓치고 지르하니안 앞에 고꾸라졌다. 지르하니안이 비웃으며 말했다.
“저항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누마미스는 불에 데인 듯한 고통을 참으며 앞에 떨어진 총을 주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총을 쏘던 클라단이 재빨리 몸을 날려 지르하니안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손을 올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였다.
“누마미스! 어서 쏴!”
“탕!”
누마미스가 떨어진 총을 집어 지르하니안을 쏘았다. 총알은 지르하니안과 클라단의 몸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지르하니안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죽지 않는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 너희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보라색 연기가 네론의 몸에서 빠져 방 밖으로 사라졌다. 마가들 역시 썰물처럼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없었다. 클라단은 지르하니안이 빠져나간 네론을 안고 쓰러지며 말했다.
“당신이 다시 나타나더라도 우린 끝까지 싸울꺼야.”
“쾅!”
그때였다. 닫힌 문쪽에서 큰 충격음이 들려왔다. 천장에 있던 수정석이 통째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이 박살나고 방안은 온통 먼지로 뒤덮혔다. 그 먼지를 뚫고 듀발의 모습과 나머지 탐사대원들이 뛰어들어왔다. 클라단과 누마미스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떨어진 수정석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생긴 먼지들이 반짝이며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잘했어.. 누마미스.”
클라단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누마미스가 클라단에게 기어갔다.
“미안해… 내가 널….”
누마미스는 눈물을 흘리며 클라단을 보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쏘라고 했잖아. 우리가… 우리 가이아가 제일 먼저… 신지구를 찾았네. 누마미스 가빈 선장의 약속을 지켜줘.”
클라단이 힘겹게 말했다. 아나타가 달려와 황급히 클라단을 봐주기 시작했다.
“그래 약속할께. 걱정마 클라단.”
누마미스는 클라단을 보고 있었다. 클라단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물 때문인지 클라단의 얼굴이 점점 흐려져갔다. 아니타는 아스테라와 듀발에게 힘없이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스테라는 황망히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누마미스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가이아인들은 지르하니안의 재림을 막기 위해 궁전을 파괴하기로 결정을 했다. ‘어둠의 궁전’이라 불리던 그곳을 파괴한 이후, 그 입구를 클라단의 무덤을 만들어 봉인을 하였다. 그리고는 길을 인도해준 거울 암벽과 소임을 다하고 불시착한 방주를 기리는 뜻에서 사원을 새로 짓고 그곳을 ‘빛의 사원’이라 명명했다.
“앞으로 일년에 한번 같은 날에 모여, 이 곳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클라단의 희생을 기리는 제를 지내도록 하세.”
클라단을 위한 추모기도가 끝나자 아스테라가 말했다.
가이아인들은 마가들이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지르하니안이 이야기 했던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힘을 준다는 틸레 나무를 찾아가기로 한 것이였다. 정말 그런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생명이 가득한 숲을 찾고 새롭게 터전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누마미스는 방주를 떠나기전에 조종실에 있던 무전기를 개조해야만 했다. 먼 우주까지 신호를 보내기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였다. 다행히 파괴되지 않은 부품들을 모아 개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클라단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누마미스는 잠시 기뻤다.
“세일 호! 우리는 신지구를 발견한 가이아인입니다. 여기에 있는 좌표가 여러분들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신지구의 위치입니다. 이 신호를 받는 모든 지구인들이 이 곳으로 오기를 희망합니다.무사히 새로운 집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세일 호!”
누마미스가 무전기의 전원을 넣자 녹음된 무전이 전송되기 시작했다. 지구와 똑닮은 밤하늘을 지나 머나먼 우주까지 무전이 날아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우주를 떠돌고 있는 다른 지구인들이 받아보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 지 알 수 없었다.
‘신호의 발송 기간을 얼마로 설정할까요?’
누마미스는 컴퓨터 화면에 나오는 알림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세일 호’라고 나직히 중얼거린 후 키보드로 다음과 같이 입력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