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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face
2021년 12월 22일

시즌2. 10. 행성 아레나

게시판: Three Kingdoms 소설

계약자가 선택되자, 아수라는 자동으로 순항을 시작했다. 계약자는 그들의 다른 ‘플래닛’을 받아들인 외계 종족과 대결해야 하는 행성으로 가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위원회는 미래를 위해 더 많은 루흐다의 형질을 가진 이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루흐다의 순수한 형질 앰플은 여러번의 실험으로 거의 바닥을 드러냈고, 부작용 또한 심각해서 아무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었다.


결국 과학자들이 노력끝이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그들은 루흐다의 이기들 중 하나를 이용해, ‘사이오닉 기어’라는 특수한 장치를 생산했다. 평상시에 간단히 착용할 수 있는 이 장치는 인간에게 사이오닉 능력을 부여하면서 루흐다의 이기를 다룰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만, 이 장치에는 루흐다 형질의 유전자 칩이 내장되어 있었으므로 인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인류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모든 생존자들은 이 사이오닉 기어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만 했다. 그러나 위원회의 위원들은 이 사이오닉 기어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생체 실험의 결과를 통해, 루흐다의 형질을 가지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들은 단지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 힘이 필요했을 뿐, 루흐다인과의 만남 따위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계약자에 대한 연구 역시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어느날 과학자들은 그녀가 아수라와 접촉할 때마다 어떠한 물질을 체내에 주입받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계약자의 건강상태는 줄곧 면밀히 체크되고 있었는데, 그녀가 아수라와 접촉하면서 그 물질을 주입받을 때마다 건강상태가 크게 호전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였다.


위원회는 그 물질의 샘플을 확보할 것을 지시했고 과학자들은 아수라로부터 그 물질이 주입되었을 때, 그녀의 혈액을 뽑아 특수한 물질의 추출에 성공했고 곧바로 분석에 돌입했다. 혈액에서 추출한 물질은 전혀 새로운 것으로, 상처가 즉각 아물고 병이 든 실험용 쥐를 한 두시간만에 낫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계약자의 말에 따르면 아수라는 그 물질의 이름을 ‘엘릭서’라고 했다. 아수라와 감응하면서 소모되는 계약자의 정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아수라가 엘릭서를 그녀에게 주입한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그녀의 혈액에서 그 문제의 엘릭서를 추출해 내는데 성공했다. 위원들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불로불사의 약을 두고 숨겨왔던 욕망을 참아낼 수 없었다. 그것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계약자의 엘릭서는 위원들의 젊음을 유지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로 인해 계약자의 몸은 날로 쇠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흡혈’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하였다. 과학자들은 ‘흡혈’로 인해 그녀의 수명은 길어봤자 이삼십년으로 예측했다. 사람의 수명치고는 지나치게 짧았으므로, 위원회는 어떻게하면 계약자를 유지할 것인지 대책에 골몰했다.


“계약자는 수백번의 실험끝에 아수라를 깨우는데 유일하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루흐다의 형질은 바닥이 났고, 그녀가 죽으면 새로운 계약자를 다시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장웨이가 위원회가 모인 자리에서 경고를 하고 있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류자오준이 말했다.


“그녀의 혈액을 더 이상 사용하면 안됩니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수명은 크게 줄어듭니다.”


장웨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심한 거부반응이였다. 모두들 알고 있었다. 엘릭서를 포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대안은 없는 것이오?” 류자오준은 근심스럽게 좌중들을 둘러보았다.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구석진 곳에서 량진바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야망이 많은 사람이였고 항상 류자오준의 옆에서 정치적 조언을 해주는 참모중 한 사람이였다. 그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뭔가?” 류자오준이 물었다.


량진바오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자식을 새로운 계약자로 삼는 겁니다.”


또 한번 웅성거림이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였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류자오준은 왕웨이를 보고 물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녀의 생식능력은 정상입니다. 다만 출산을 견딜 수 있을만큼 그녀의 체력이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왕웨이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는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딱히 밖으로 표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한심한 자리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 뿐이였다.


“하지만, 누가 그녀를 임신 시킨단 말인가?” 류자오준이 량진바오에게 물었다.


량진바오는 대답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위원들을 쭉 훓어보기 시작했다. 일부는 눈치를 챈 것 같았고, 머리가 둔한 이들은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옛날 우리가 왕조시대였을 때는 황제의 혈통을 가진 제후가 세상을 지배했었지요.


이제 아시겠습니까?”


량진바오가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가 제후가 될 절호의 기회입니다. 혈통을 만드셔야지요.”


영원한 젊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위원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계약자의 유전자를 계승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몇 번의 회의 끝에 그들은 공평하게 계약의 계승자를 소유할 ‘아수라 계승 체계에 관한 규약’를 고안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이러했다.


• 계약자가 가임기로 성장했을 때, 위원들은 같은 시기에 계약자와 성교하여 그녀를 임신시킨다. 아이의 아버지는 별도로 확인하지 않는다.


• 이 계약자의 잉태 행위는 정해진 주기에 따라 실시하며 계승자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제한없이 계속 실시한다.


• 계약자가 임신한 아이들 중 남자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제거한다.


• 계약자가 낳은 여자 아이들은 계승자 후보로 자격을 얻고, 계약자의 사망 시, 신체적으로 가장 적합한 후보가 계약의 계승자로 선정된다.


최대한 점잖은 어조로 규약이 결정되었지만, 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위원들은 없었다. 어찌되었든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규약을 받아들였다. 위원회 멤버는 아니였지만, 대책회의에 자문 역할로 참석하여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왕웨이는 참담한 심경을 뭐라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수라의 발견 때부터 계약자가 선정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봐온 그로서는 점점 광기로 미쳐돌아가는 위원회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이러한 비인간적인 체제와 규약은 결코 실현되지 않아야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함께할 동지를 구해야만 했다.


“계약자를 빼돌리자는 말이오?” 왕슈잉이 놀라 장웨이에게 되물었다.


“빼돌리는게 아니라, 해방을 시키자는 겁니다. 계약자가 없어지면 아수라는 다시 잠들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우리가 있던 선단으로 돌아가면 그 뿐입니다.”


장웨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왕슈잉은 장웨이의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를 발견했다. 루흐다의 언어를 최초로 함께 해석한 장본인으로서, 그 역시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학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장웨이는 왕슈잉을 설득하려 했다.


“위원회가 알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왕슈잉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것입니다.”


왕슈잉은 아수라를 발견하고, 루흐다 문명과 소통을 열었다는 공로로 위원회에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그 역시 이번 결정이 많이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장웨이는 왕슈잉에서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왕슈잉은 진지한 눈빛으로 장웨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며칠 후, 왕슈잉은 계약자가 머무는 숙소의 출입카드를 장웨이에게 복제해주었다. 장웨이는 모두가 잠든 밤 몰래 계약자의 숙소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계약자 옆에는 시녀들이 함께 잠들어 있었다. 장웨이는 빠른 손놀림으로 시녀들에게 수면제를 투여했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시녀들은 깊은 잠에 빠져버렸고, 장웨이는 방 가운데에 놓인 침상으로 다가가 고결하게 잠든 계약자를 살며시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창백한 얼굴의 계약자가 물었다.


“내가 너를 처음 아수라에게 데리고 갔었는데, 기억하겠니?” 장웨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알겠어요. 그때 그 과학자 아저씨.” 계약자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난 너를 구하러 왔단다.”


“구하다니요?”


“넌 더 이상 아수라와 함께 있으면 안돼. 그럼 넌 죽게될거야. 그러니 나와 함께 이 곳을 떠나자.” 장웨이가 계약자의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 하지만 계약자는 저항하기 시작했다.


“왜?” 장웨이가 물었다.


“저는 아수라가 좋아요. 제 유일한 친구인걸요.”


“그 때문에 죽어도 좋다는 거니? 맨 매일 피가 뽑히고,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잖아.”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와 아수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장웨이는 알 수 없었지만, 둘 사이에 깊은 유대감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넌 결국 죽게될거야. 아수라 때문에….”


“아수라가 절 지켜준다고 했어요.” 계약자가 말했다.


“널 지켜주기 위해 아수라가 네게 준 선물로 인해 네가 죽는 거야.”


장웨이는 다시 계약자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녀는 계속 저항하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네가 계속 아수라와 함께 있겠다고 한다면 , 아저씨는 널 죽일 수 밖에 없단다.”


장웨이는 계약자의 팔을 놓고, 권총을 뽑아들었다.


“구해주겠다더니 왜 절 죽이려고 하죠?” 계약자가 물었다.


“니가 아수라와 함께 있는 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악마가 될 거야. 너와 니 아이들의 피를 빠는 흡혈귀가 되고 말거야. 난 그것을 막아야돼.”


장웨이는 계약자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장웨이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계약자를 죽이겠다는 건 계획에 없었지 않나?”


왕슈잉이였다. 어느새 다가온 그는 장웨이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을 내려놓게. 계획대로 계약자를 우주선에 태워야해.” 왕슈잉이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계약자가 살아있으면 또 다시 위험해질거에요.”


장웨이는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계약자를 죽이자는 건가?” 왕슈잉이 물었다.


“그녀와 아수라는 이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게 최선입니다.”


장웨이는 권총을 다시 계약자에게 겨냥하며 말했다.


“소중한 계약자를 죽이는 건 위원회의 일원인 내가 용납못하네.”


장웨이는 왕슈잉의 말에 어이가 없어 돌아보았다. 그 순간이였다.


“탕!”


왕슈잉이 장웨이를 쏘고 말았다. 장웨이는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왕슈잉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숨이 멎어가는 장웨이를 보며 왕슈잉이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계약자를 빼돌려 아수라를 봉인하자고 했었지. 나도 그 계획에는 동의하네. 계약자만 확보한다면 내가 위원회를 장악할 수 있으니 말야. 모두들 아수라와 계약자 없이는 살 수 없으니, 계약자의 목만 단단히 틀어쥐고 있으면 내가 왕이 되는거지. 그래서 내가 자네를 도와준거야. 계약자를 내게 데려오라고. 자네의 이상은 높게 평가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게 돌아가지 않는다네.”


왕슈잉이 손짓하자 밖에 있던 몇 명의 병사들이 계약자를 끌어냈다. 장웨이는 죽어가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품었던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였다. 계약자를 독점하겠다는 왕슈잉의 야망은 몇 시간도 지속되지 못했다. 계약자를 몰래 우주선에 태우는데는 성공했지만, 아수라의 방해로 인해 이륙할 수 없었다. 결국 왕슈잉과 일당들은 모두 체포되고 말했다. 분노에 찬 위원회의 빠른 처리로 왕슈잉과 그 일당들은 다음날 모두 공개 총살되고 말았다.


얼마 후, 계약자는 새로이 계약자가 될 여자아이를 낳았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계승 체계의 시작이었다. 위원회는 왕슈잉의 반란 사건을 계기로 체제를 공고히 할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백년대계를 생각할 정도로 완벽해야 했고, 권력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새롭게 태어날 시민들도 아우를 수 있어야했다.


위원들은 계약자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위원들의 피가 섞이고 섞인 그 계약자는 아주 훌륭한 사회적 기둥이였다. 계약자들은 모든 위원들의 피를 지니고 있었고, 어느덧 모두의 자손이 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계약자를 공유하면서 하나의 가문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능한 왕조들이 사용했던 방법대로 위원들은 서로를 합쳐 왕조를 만들었고, 그들 스스로가 그 왕조의 일원이 되었다. 이는 같은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체계가 공평하게 돌아간다면 어느 누구도 가족에게 칼을 뺄 수 없을 터였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이 완벽한 체계를 자화자찬하며 높이 평가하였다. 인류 사회의 마지막 완성된 체제라 부르며 모든 사람들에게 복종과 존경을 강요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한편, 아수라는 긴 우주 여행을 끝내고 어느 행성에 도착하였다. 지구처럼 땅이 단단하고 대기도 있었지만, 숲도 강도 없는 모래와 바위 뿐인 척박한 행성이였다. 이 새로운 세상에 자리를 잡자 마자, 위원회는 자신들이 구상을 실행에 옮겼다. 계약자를 대중에 공개하여 ‘여제’로 선포하였고 위원회는 ‘황가’로 명칭을 바꾸었다. 아름답게 치장된 여제는 백성들을 위한 기둥이 되었고, 그녀는 즉 그들의 보금자리이자 수호자인 아수라와 동격으로 간주되었다. 이 새로운 왕조의 이름은 ‘이나스’로 지어졌다. 백성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일부는 여제의 정통성과 더불어 외계 기술 자체를 불신했다. 그러나 이는 얼마 후 벌어진 외계 종족과의 전쟁에 묻히고 말았다.


이 첫번째 전쟁으로 황가는 체계의 기틀을 완성지었다. 전쟁에 패배하면 죽음 뿐이였으므로 도박에 전 재산을 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 도박은 성공하였다. 백성들은 여제가 조종하는 아수라가 친히 외계 종족과 싸워 그들을 격퇴하는 모습을 목도했고, 그때부터는 어느 누구도 새 왕조의 권위를 부정하지 못했다.


그후 벌어진 연이은 전투는 백성들 모두를 무장시켰고, 특히 실험을 통해 창조한 루흐다의 형질을 가진 집단은 황가에 의해 군인들로 길러져 매우 뛰어난 전투력으로 외계 세력과의 전투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 때부터 위원들은 ‘제후’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스스로를 칭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불사가 있었으므로 자신들이 이룩한 국가의 발전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제후들은 권력을 잡고, 누렸으며 황위 계승을 위해 정기적인 강간을 몸소 주도하였다. 그 결과로 태어난 제후들은 딸들은 아수라 내에서 계승자 후보로 관리되었다. 훗날 제후들은 여제와 그 후보들을 관리하고 유지시키는 황위 계승청을 따로 세웠다. 이 계승청은 혈통 계승을 위한 연구 뿐만 아니라, 백생들에게 황위 계승 과정이 누설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과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외계종족과의 전쟁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나스 제국의 백성들은 외계종족과의 전쟁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단 한가지, 인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간악한 독재자가 된 제후들이 철저히 숨겨온 비밀이 있었다. 바로 낙원 ‘카일러미아’의 존재였다.


제 23대 계약자인 ‘오르데’는 유난히 2대 계약자 ‘주다스’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갸름한 뺨과 연약한 눈, 제후들에게 새로운 권력을 가져다 준 그 2대 계약자의 용모를 제후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신기한 것은 그렇게 수많은 제후들의 유전자들이 조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대 계약자인 ‘주다스’와 쏙 빼닮은 외모가 탄생했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오르데의 아버지가 누구일까 궁금해하는 제후들도 더럿 있기도 했다.


오르데는 태어날 때부터 천식이 있었다. 주치의들은 그녀의 수명을 29년 내외로 산정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엘릭서를 공급받지 못했기에 항상 질병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살았다. 그녀의 뛰어난 외모와는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제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는 아름답게 치장한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화려한 침상에 곱게 눕혀진 그녀의 숨은 점점 가팔라졌고,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다. 그녀는 힘겹게 말을 시작했다.


“제후 여러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후들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알고 계셨나요? 아수라가 저에게 말했어요.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가야할 낙원이 있다고요.


그곳이 우리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어요….”


제후들의 침묵은 계속 되었다. 그녀는 직감한 것 같았다. 아주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알고 계셨군요. 저 백성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야….”


제후들은 여전히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오르데는 그들의 딸들 중에서도 유난히 착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녀를 동정할 특별한 이유는 그들에겐 없었다.


오르데는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말했다.


“그 사실을, 제발 그 사실을….”


그러자 참다 못한 제후들 중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아직은 백성들에게 알려줄 수 없단다.”


“왜죠?” 오르데가 물었다.


“그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르데 역시 눈물만 고일 뿐이였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 다시 말했다.


“약속해 주세요. 제후님들….


언젠가 전쟁에 이겨서 백성들에게 그 카일러미아를 알려주겠다고요.


부디 그들에게 희망을….”


제 23대 계약자이자, 이나스의 초대 여제인 오르데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채, 눈을 뜬 채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태어날 때부터 힘겹게 뛰던 그녀의 심장은 멈추고 말았다. 실내에는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기계음만 울리고 있었다. 여제의 죽은 얼굴에는 시녀들이 덮어준 하얀 천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거짓말을 하던 제후가 비웃으며 말했다.


“열쇠 주제에 ….”


제후들 사이에서 잇달아 웃음이 터졌다.


“자네 참 짖굿군.”


누군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여제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제후들은 하나같이 밝은 얼굴로 잡담을 나누며 그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오르데로 시작한 여제들은 죽기 직전까지 백성을 진심으로 걱정했고, 세대가 이어질 수록 그 사명감은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그저 아수라의 가공할 힘을 열어줄 열쇠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기는 제후들로 인해 그 사명감은 한낱 과분한 오지랍으로만 여겨질 뿐이였다. 그녀들은 그렇게 차례대로 희생되어갔다.


제후들은 카일러미아로 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에 모든 이야기를 다 끝내놓았었다. 굳이 강력한 외계인들이 사는 곳에 가서 얻을 이득이 없었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모험은 필요없었기 때문이였다. 일부러라도 끝내지 않는 전쟁이 그들 대신 백성들을 통제해주고 있었다. 이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들은 영원불멸이었다.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권력과 영원한 행복만 있을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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