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해골동굴 안쪽 갈림길에 서있었다. 다들 지치고 난감한 표정들이였다. 벌써 몇바퀴째인지도 모를만큼 동굴 안에서 뱅뱅 돌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지 않냐?” 앤리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다야 너도 모르겠어?”
횃불을 든 로드리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뚱뚱한 탓에 누구보다 힘들었다. 제다는 앞 쪽으로 나가야 양쪽 갈림길을 살피고 있었다. 그 길이 그 길 같고, 아까 갔던 곳 같기도 했다.
“어쩌지…. 아후~ 난 모르겠다. 좀 쉬자.”
로드리케는 제다가 대답이 없자, 횃불을 땅에 꽂고는 포기한듯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야! 일어나 마가들이 쫒아올거라구!”
가누가 로드리케를 뒤에서 끌어 올렸다. 무거운 로드리케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앉아 있으니 좀 시원한 걸! 바람도 불어오는 것 같고….”
로드리케가 웃으며 말했다.
“야! 마가들이 오고 있어!”
뒤에서 살피고 있던 앤리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이들은 무기를 들고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마가 몇 마리가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쏘자.”
제다가 말했다.
“그래. 그게 좋을 것 같아.”
앤리스가 스쿠타을 들고 말했다.
“지난 번 처럼 눈을 노려. 동굴에서도 잘 보일테니.”
제다가 조준을 하며 말했다.
“로드리케 횃불을 낮춰! 마가들에게 다 보이잖아.”
자비에가 로드리케에게 소리를 낮춰 말했다. 로드리케는 다급하게 횃불을 아래로 숨겼다.
“푸쓩!”
제다가 먼저 스쿠타을 쏘기 시작했다. 앤리케와 가누도 합세했다. 마가들이 차례대로 쓰러지고 있었다. 그러자 스쿠타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마가들끼리 신호를 주고 받았는지는 몰라도 마가들이 더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가들의 숫자를 보고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망했어! 이쪽으로 도망가자!”
제다가 갈림길 위쪽에도 길이 나있는 걸 보고 바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따라서 정신없이 바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바위를 붙잡고 올라가던 로드리케가 그만 횃불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으악! 어쩌지? 다시 가지러 내려갈까?”
로드리케가 제다를 보며 난감한 듯 물었다.
“아니야 그냥 내버려둬. 마가들이 불빛을 보고 몰려드는 것 같아.”
제다가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다의 말대로 쫒아온 마가들은 횃불을 앞에 놓고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고만 있었다. 게다가 마가들은 바위를 타고 올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한숨을 돌린 아이들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바위 꼭대기의 평평한 곳이였는데 껌껌해서 도통 보이질 않았다. 제다가 가방에서 야광봉을 꺼냈다. 반으로 부러뜨리니 초록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 정도의 빛으로는 마가들이 반응하지 않았다. 제다는 야광봉을 들더니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로드리케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제다가 야광봉을 벽 가까이 대니 떨어진 횃불에서 올라온 연기가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여기야! 이 연기를 따라 올라가면 돼!”
제다가 앞장서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좁은 틈을 비집고 올라가보니 돔처럼 둥글게 생긴 큰 동굴이 나타났다. 가운데는 드래곤의 둥지가 있었고, 드래곤 한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천장에는 큰 구멍이 뚫어져 있어 저기로 드나드는 것 같았다. 제다는 그 드래곤이 애쉬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지만 일단 바위 뒤에 숨어서 작전을 짜보기로 했다.
“애쉬가 엄청나게 커버렸어!”
로드리케가 팔을 크게 벌리면서 말했다. 며칠 사이에 애쉬는 거의 두 배 가까이 커져있었다.
“제다야, 할 수 있겠어?”
앤리스가 물었다.
“니가 한다고 하지 않았냐? 테이밍 천재님?”
로드리케가 앤리스의 옆구를 쿡 찔렀다.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
앤리스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가까이 갔다가는 화염 때문에 테이밍을 걸 시간을 벌기가 힘들어.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 뿐이야!”
제다가 앤리스를 보며 말했다.
“뭔데?”
앤리스는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앤리스, 애쉬의 피로 만든 파르를 쏴서 드래곤을 맞춰야해.”
제다가 엔리스에게 약병을 내밀었다.
“연구실에서 가져온게 이거였군!”
앤리스가 약병을 받아들고는 말했다.
“기회는 단 한번 뿐이야. 부탁한다!
로드리케! 애쉬의 이목을 끌어줘. 불을 뿜으면 얼른 바위 뒤에 숨어야해!”
제다가 로드리케를 보며 말하고는 반대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난 못해!”
로드리케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애쉬가 그 소리를 듣고 돌아보았다. 로드리케는 애쉬를 보고 깜짝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애쉬가 숨을 모으더니 로드리케를 향해 화염을 뿜었다.
“으악!”
로드리케는 미친듯이 달리고 있었다.
“로드리케 바위뒤로 숨어!”
자비에가 외쳤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로드리케가 커다란 바위 뒤로 숨자마자 화염이 바위를 때렸다. 다행히 로드리케는 무사한 것 같았다.
“이때야! 앤리스 파르를 쏴!” 애쉬 뒤쪽에 숨어였던 제다가 외쳤다.
앤리스는 스쿠타 활에 파르를 장착하고 애쉬에게 겨누었다.
“탈루스 제일 신궁의 솜씨를 보여주마.”
앤리스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은 애쉬의 어깨에 적중했다. 애쉬는 고통에 크게 몸무림을 치며 앤리스 쪽을 돌아보았다.
“야호! 맞았다!”
앤리스는 자신의 솜씨가 믿기지 않는 듯 좋아하다가 애쉬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얼른 몸을 숨겼다. 파르를 맞은 애쉬의 어깨쪽에는 먹물을 뿌린 것 같은 문양이 생겨났다. 그러자 애쉬 근처에 숨어있던 제다의 팔에 있는 파르가 빛나기 시작했다. 제다는 정신을 집중했다. 제다의 파르와 드래곤에게 생긴 문양이 서로 비슷해지면서 형광물질처럼 빛이 나고 있었다.
“좋았어. 먼저 행동을 제어한다!”
제다가 애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목표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애쉬가 다시 로드리케 쪽으로 큰 화염을 뿜었다. 화염이 바위를 온통 집어삼킬듯이 휘감고 있었다.
“아악! 뜨거워! 바위가 녹아버리겠어. 어떻게 좀 해봐!”
로드리케가 죽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로드리케! 뒤쪽에 마가들이야!”
자비에가 소리쳤다. 마가 몇 마리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로드리케의 소리를 듣고 기어 올라온 것 같았다.
“우린 이제 죽었다….”
로드리케는 진퇴양난이였다. 앞에는 드래곤, 뒤에는 마가들이 있었다. 로드리케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야! 이리로 오면 어떡해!”
앤리스가 기겁을 하며 외쳤다. 로드리케가 달리자 애쉬가 다시 화염을 뿜기 시작했다. 그 뒤로 마가들이 쫒아오고 있었다.
“제다야 도망치자!”
가누가 외쳤다.
“도망? 아, 아니야 안돼!”
제다는 눈을 감고 다시 테이밍을 해보기로 했다. 지난 훈련에서 테이밍에 실패하자 삼촌 듀발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제다야, 제일 중요한 것은 네 안에 있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거야.
그리고 친구가 되는 거지. 야수들은 그런 사람에게 복종하는 거란다.’
제다는 다시 집중을 해보았다. 애쉬의 마음이 눈앞에 보였다. 그 마음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다가가면 타버릴 것 같은 거대한 화염처럼 느껴졌다.
‘애쉬! 나는 네가 두렵지 않아.
너는 내 친구야. 제발 마음을 열어줘….’
제다가 용기를 내어 애쉬의 마음 속에 있던 화염 안으로 들어가자, 애쉬가 공격을 멈추고 제다를 가만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제다는 애쉬와 마음의 통로가 생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애쉬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됐다!”
제다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도망치던 친구들이 제다를 쳐다보았다. 애쉬가 제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부드럽게 목을 드리워주고 있었다. 제다가 애쉬의 등에 올라탔다.
“제다 만세! 마가들을 모두 태워버려”
로드리케가 기뻐서 소리쳤다.
“애쉬! 우리 친구들을 구해줘.”
제다가 애쉬의 등에서 말했다. 애쉬가 한번 크게 포효하더니 마가들에게 화염을 쏘았다. 화염에 맞은 마가들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모조리 새까만 잿덩이로 변해버렸다.
“만세! 드디어 드래곤이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가이아 왕궁은 여전히 수천마리의 마가들이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쓰려뜨리고 쓰려뜨려도 그 끝을 알 수 없이 밀려들어오는 마가들은 악몽 그 자체였다. 마가들에게 정원 구석 끝까지 몰린 누마미스는 호위 병사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호위병들은 방패로 벽을 만들어 마가들을 밀어내고 있었고, 방패를 뚫고 빠져나오려는 마가들을 누마미스와 호위대장이 칼로 내려치며 막아내고 있었다.
“아스테! 우선 몸을 피하십시오!”
정원의 담까지 밀려버리자 호위대장이 누마미스를 보며 말했다.
“자네들을 두고 갈 수는 없네!”
누마미스가 칼을 휘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호위대장은 누마미스의 팔을 붙잡고 사정했다.
“익룡을 부르겠습니다. 그걸 타고 피하십시오.
여기서 가이아가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마가들은 저희가 막겠습니다.”
“듀발이 군사들을 데리고 올걸세! 그때까지 버텨보세.”
“역부족입니다. 어서 빨리 피하십시오.”
누마미스와 호위대장이 실랑이를 펼치고 있을 때, 레센느가 익룡부대를 이끌고 날아왔다. 익룡 부대원들은 하늘에서 루드라를 쏘며 마가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아스테님! 이쪽으로!”
레센느가 누마미스의 뒷쪽으로 날아와 담 위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레센느의 뒤에는 아나타도 함께 타고 있었다.
“괜찮으니 어서 마가들을 물리치세!”
누마미스가 말했다.
“루드라로 제압하기엔 마가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서 대피를!”
레센느가 누마미스를 잡아 끌며 말했다. 누마미스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가들이 다른 마가의 등을 밟고 높이 뛰어 익룡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낮게 날며 루드라를 쏘던 익룡 하나가 뛰어오른 마가들에게 할퀴고 물려 떨어지고 말했다. 떨어진 익룡에게 순식간에 수십마리의 마가가 몰려들었다. 익룡과 익룡을 조종하는 병사는 달려든 마가들에 의해 갈갈이 찢기고 말았다. 어느새 지붕에 올라간 마가들이 익룡에게 뛰어오르며 공격을 시작했다. 미처 높이 피하지 못한 익룡들이 올라타고 매달리는 마가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채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겨우 남은 몇기의 익룡부대원들은 감히 아래쪽으로 접근을 하지도 못하고 위에서 빙빙 돌고만 있을 뿐이였다.
“익룡으로는 도저히 못막을 것 같습니다.“ 레센느가 고개를 저었다.
“아 가이아가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누마미스가 하늘을 보며 허탈하게 말했다.
그때였다. 정원에 검고 큰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익룡보다 훨씬 큰 날개를 가진 날짐승의 그것이였다.
“설마?”
아나타가 놀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람들도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드래곤이 마치 다이빙하듯 우아하게 하늘에서 지상으로 활강해 내려오고 있었다.
“오 가이아시여!” 아나타는 드래곤에 타고 있는 제다를 보고 놀라 환호성을 질렀다.
드래곤이 불을 뿜으며 바닥으로 스치듯 내려왔다. 화염에 닿은 마가들은 불타오르며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남은 마가들이 겁에 질려 도망을 쳐봤지만 드래곤이 뒤에서 화염을 한 번 쏠 때마다 수백마리의 마가들이 불태워지고 있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수천마리의 마가들은 드래곤이 뿜은 화염에 모조리 타버리고 말았다. 남은 몇 마리의 마가들은 힘을 얻은 병사들에 의해 전부 죽임을 당했다. 물론 피해도 있었다. 왕궁은 난장판이 되어 버렸고, 불에 탄 마가들이 뛰어다니다가 곳곳에 불이 옮겨붙어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틸레나무가 마가들이 옮겨온 불에 의해 새까맣게 타버렸다는 것이였다.
제다는 드래곤에서 내려와 재가 되어버린 틸레나무를 만지고 있었다.
“항상 내가 힘들 때마다 쉴 곳이 되어줬는데…. 고마워 모두 네 덕분이야.”
제다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너무 슬퍼하지마 제다야.”
왕궁으로 돌아온 친구들이 뒤에서 제다를 토닥거리며 위로했다.
“그래. 앤리스, 로드리케, 가누, 자비에….
너희가 없었으면 절대 못했을꺼야.”
제다가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서 씩씩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내가 파르를 한방에 맞히지 못했다면 절대 못했을거야.”
앤리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 전에 내가 목숨을 걸고 불을 피해다녔기 때문이지!”
로드리케가 뽐내며 말했다. 로드리케는 그을음으로 얼굴이 아직도 거뭇거뭇했다.
“못한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앤리스가 로드리케를 비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피해다닌 건 나라구!” 로드리케가 억지를 부렸다.
“푸하하하하”
다섯명의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우린 앞으로 계속 함께 하자. 죽는 날까지!”
제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한날 한시에 같이 죽기로 하자!”
앤리스가 제다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며 말했다.
“제법 진지한데? 좋아!”
로드리케도 손을 포갰다. 가누와 자비에도 손을 올렸다.
“한날, 한시에!!!”
아이들의 손이 높이 들렸다. 하늘엔 모처럼 아름다운 석양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