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
  • 콘티
  • 연출
  • 편집
  • 원고
실제 작동 상태를 확인하려면 라이브 사이트로 이동하세요.
  • 카테고리
  • 전체 게시물
  • 내 게시물
Babyface
2021년 12월 22일

시즌2. 6. 에르시온 선언

게시판: Three Kingdoms 소설

그 후 몇년간 엑소더스 선단은 물자를 비축하고, 우주선에 반중력 플레이트를 장착하는 준비기간을 가졌다. 위드루프는 이 모든 준비를 열정적으로 진두 지휘했고 당파와 세력, 계급 구분을 초월한 협력 분위기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마침내 출발을 앞둔 당일, 워드루프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에르시온 선언’을 모든 엑소더스인 앞에서 발표했다.


“제 심금을 울린 명언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선조들이 믿었던 격언이기도 하지요.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며, 내일의 현실이다’라는 말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덕분에 이 선단이 생겼고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에 멸망한 지구를 벗어나 유랑을 시작하게 되었죠. 어떤 동포들은 새로운 지구를 발견했고, 우리에게 약속했던 메시지인 ‘세일 호’를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싸움도 잠시 멈추고 기업이든 가문이든 시민이든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 드디어 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 시점, 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지구인의 후예라는 가치를 되찾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단의 모든 여러분께 우리 종족의 새로운 이름을 감히 제안할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에르시온’, 지구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만이 앞으로 우리가 마주칠 지 모르는 어떠한 외계종족이나 우리와 같은 조상을 가진 지구인의 후예에게 떳떳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멸망이란 운명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펼친 선조들의 뜻을 이어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2의 고향에 정착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는 에르시온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신지구와 그곳에 있을 동포들은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오직 우리만이 인류의 진정한 후손입니다.”


워드루프의 에르시온 선언은 새로운 출발을 앞둔 선단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선단 모두가 워드루프의 연설에 동의하는 뜻으로 출발 직전 우주선의 표식을 변경했다. 관습적으로 함선명에 포함되었던 엑소더스란 선단 명을 모두 에르시온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달았다. 모두들 스스로가 지구인이였다는 마음을 새로이 품고 신지구를 향한 출항을 시작했다. 에르시온의 영광이 영원할 것을 꿈꾸며….


에르시온 선단은 신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총 4521일을 항해했다. 선단의 속력은 광속에 가깝게 가속되었다. 반중력 플레이트의 도움으로 소행성 지대를 벗어나면서 선단은 새로운 지구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신되는 세일 호라는 메시지를 직접 수신할 수 있었다. 순항 우주선을 보낸 워드루프의 반짝이는 혜안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소행성 지대가 메세지를 교란한 탓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그 메세지는 결코 그들에게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었다.


에르시온 선단은 오랜시간 어떠한 천체와도 마주치지 않는 검은 무의 공간을 항해했다.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그처럼 실감했던 시기가 없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목표를 위해 대양을 항해하는 선원들처럼 선단의 사람들은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그럴 때마다 워드루프가 열정적인 리더쉽으로 다시금 사람들을 이끌어 나갔다.


항해 중에도 코인 트러스트의 로트필드는 뒤에서 은밀히 위드루프의 체제를 붕괴하는 공작을 벌였다. 사람들을 불안에 빠뜨리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워드루프의 결정에 트집을 잡는 식이였다. 그러나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워드루프를 시민들은 굳건히 지지했고 결국 코인 트러스트는 신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항해를 1000일 정도 남겨두었 때 에르시온 선단은 아름다운 성간 구름을 뚫고 신지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항성계를 관측했다. 500일을 남겨 두었을 때, 그들은 전파가 발사되는 행성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작고 푸른 점에 모두들 희망을 가졌고, 물자가 다 떨어져가고 있었으나 에르시온인들은 끈질기게 참고 견뎠다. 에르시온 선단은 신지구의 궤도 앞에서 속력을 줄였다. 얼음 결정띠가 둘러진 푸른 행성이 그들 앞에 있었다. 경탄도 감격도 잠시, 워드루프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선단의 모든 우주선들이 착륙할 수 있는 대륙 북부의 평야지대를 착륙 장소로 정했다.


여기서부터 경쟁이 시작되었다. 저마다 착륙할 장소를 자율적으로 정하기 시작하면서 각 가문의 우주선들은 자신들의 살 땅을 확보하고자 착륙 중인 우주선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워드루프는 여기서 이미 직감했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정착이 에르시온인들의 분열을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에르시온의 우주선들은 플랜트를 중심으로 이니티움 평야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윽고 워드루프가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각 우주선 집단은 땅을 확보하자마자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변모했고, 일부는 이미 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자 무기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 이를 중재해보려고 의회를 열었지만 아무도 의회에 참석하려 들지 않았다. 선단을 지탱하던 체제가 깨져 버렸다는 걸 워드루프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에르시온은 산산조각 쪼개질 위기였다. 워드루프를 비롯한 해머 트러스트의 일원들은 에르시온인들을 다시 규합하려면 나라를 건국하는 길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해머 트러스트와 더불어 가장 큰 세력인 코인 트러스트와 접촉해 새로운 나라의 건국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코인 트러스트는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이였다. 로트필드 공작은 도리어 해머 트러스트를 배제하고 독자적인 나라를 건국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코인 트러스트의 협조가 없이는 하나의 나라를 세우기란 불가능해 보이는데….”


레노가 심각하게 말했다. 코인 트러스트와의 회동을 앞두고, 해머 트러스트의 일원들이 모여서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군.”


워드루프가 나즉히 말했다. 그의 표정은 무언가 큰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시민들의 생존 대출을 해머 트러스트가 대신 책임지겠소.”


워드루프는 코인 트러스트와의 회동에서 로트필드에게 단도집직적으로 말했다. 로트필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였다. 신지구에 내려온 이상, LOPE가 아직도 쥐고 있는 생존대출은 사실상 무의미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좁은 플랜트에서의 생존을 담보로 행해졌던 악랄한 대출 독촉은 드넓은 신지구에서는 이제 별다른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대출을 갚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였다. 생존대출의 징수가 점점 불가능해 보이던 시점에서 워드루프의 제안은 너무나 솔깃했다.


“내부적으로 논의해보겠소이다.”


로트필드는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더 원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한가지 더 제안드릴게 있습니다.” 워드루프가 말했다.


“뭐가 또 있을 수 있나요?” 로드필트는 웃으며 물었다.


“어떠한 간섭도 없이 이곳 신지구를 자유롭게 개척할 수 있는 권리를 드리겠습니다.”


워드루프의 말은 참석은 코인 트러스트 측은 물론 해머 트러스트 쪽 사람들까지 놀라게 만드는 제안이였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파격적인 내용이였기 때문이였다. 로트필드 역시 당황하고 있었다. 워드루프의 속내가 궁금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시지요.”


로트필드는 측근들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건너가버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레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저들 없이 우리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알잖아.” 워드루프가 말했다.


“생존 대출을 해결해주는 것도 우리에겐 부담이 크다구.” 레노가 말했다.


워드루프는 레노 뿐만 아니라 다른 해머 트러스트의 일원들까지 자신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강한 어조로 트러스트원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이 곳으로 데리고 왔으면,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해주는 것이 우리한테 남은 숙제입니다. 우주에서 있었던 일은 우주에 남기고, 이 땅에서는 완전히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해야하기에, 대출 탕감을 제안한 겁니다. 그리고 개척권 문제는….”


“코인 놈들에게 이 땅을 다 빼앗겨도 좋습니까?”


일원 중 누군가가 워드루프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워드루프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우리 트러스트에는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 곳은 개척해야할 땅이 너무 많거든요.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지금 딛고 서있는 이 땅과 사람들만 해도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 아닙니까? 방해꾼들이 오지에서 개척에 몰두할 때, 우리는 나라의 기틀을 잡고 번영을 도모하면 됩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양보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다.


“하나의 나라가 된다면, 그들도 우리 국민이 될 것이고, 그들이 개척한 땅도 우리 에르시온의 영토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갈라서 싸울 때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워드루프의 말에 더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잠시후 로트필드와 코인 트러스트 일원들이 다시 회의장에 웃으며 들어왔다. 그들은 워드루프의 파격적인 제안에 만족한 것 같았다. 로트필드는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에르시온을 위해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하나된 에르시온을 위해!” 워드루프가 로프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침내 양측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합의를 보았고, 이들의 합의는 분열의 위기에 처했던 에르시온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코인 트러스는 언젠가 자신들이 정권을 차지할 욕심을 숨기고 통합에 앞장섰다. 그런데 바로 이때, 코인 트러스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생존 대출을 지기로 협상한 내용에 감동해 워드루프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서명 운동이 벌어진 것이였다. 그 전까지는 에르시온에서 ‘왕’이라는 자리는 오래전 지구시절의 유물에서는 있을 법한 일이었다.


“왕정이라니!” 워드루프가 해머 트러스트가 모인 자리에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시민들이 반응이 심상치가 않아.” 레노가 말했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에르시온에서 말도 안되는 얘기야.”


워드루프는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잘 되었어. 코인 트러스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이상, 시민들을 등에 업고 왕정을 선포하는 것도 난 나쁘지 않다고 봐. 코인 트러스트를 견제하려면 강력한 권력이 필요해!” 레노가 강하게 주장하며 나섰다.


“그래도… 이건 좀….” 워드루프는 망설이고 있었다.


“노예나 다름없이 살아가든 사람들을 로트필드로부터 구원해 시민으로 만든 건 바로 자네의 선조였던 로버트 버튼 박사였어. 그 분은 플랜트를 설계한 사람이기도 했지. 지금의 우리를 있게 만든 장본인이였어. 그 분의 후손인 자네가 이제 에르시온의 미래를 설계하고,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시민들의 주장이야.” 레노가 말했다.


“맞아! 자네는 버튼 박사를 꼭 빼닮았어. 시민들이 그래서 자네를 원하고 있다네.”


“워드루프, 버튼 박사가 사랑했던 시민들을 지켜주게. 자네에겐 정통성과 명분이 있어.”


“우리의 왕이 되어주게!”


해머 트러스트의 원로들도 하나둘씩 워르루프를 강력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워드루프는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절대 저는 군림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가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제 한 몸을 에르시온에 바치겠습니다. 혹시나 제가 잘못한다면 언제든지 저를 쫒아내주십시오. 가장 높은 곳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왕이 되고 싶습니다.”


해머 트러스트의 모든 일원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에르시온을 건국한 워프루프 왕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워드루프의 제안으로 조촐한 대관식이 이니티움 평야에 착륙한 플랜트에서 이루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변할 줄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로트필드 공작은 워드루프 왕으로부터 새로 소집될 의회의 의장직을 수여받았음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신지구에 도착한 이후로 한층 악랄해진 그는 더 이상 해머 트러스트와의 정면 대결은 민심을 얻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라 판단하고 새로운 전략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표면적으로는 워드루프 왕을 충실히 보필하는 충성스런 신하로서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작업들을 야금야금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듯 코인 트러스트의 위협은 더 간교하고 은밀하게 변했지만, 버튼 왕가의 앞날은 영광스럽기만 했다. 초대 국왕이 된 워드루프 왕은 통합과 안정을 성공적으로 이룩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르시온인들은 그를 중심으로 다시 뭉치게 되었고, 에르시온 연합왕국 의회가 다시 열리게 되었다. 본격적인 입헌군주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내부의 결속이 끝나자, 워드루프는 외부의 잠재적인 위험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그들에게 ‘세일 호’ 메시지를 보낸 가이아인들과 접촉했고, 가이아인들의 대표와 빛의 사원에서 회담을 열기로 했다.


“모든 인류를 위해 이 곳 빛의 사원에서 신호를 보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히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낙원을 밟게 해주었습니다.”


워드루프는 가이아의 아스테인 누마미스를 만나는 자리에서 먼저 달려가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가이아인들은 조금은 당황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들에게 아스테는 위엄있고 권위를 가진 존재인지라 항상 경거망동하지 않고 격식을 차리는 것이 주요한 덕목이였다. 그런데 에르시온의 워드루프 왕은 체면도 차리지 않은 채 뛰어와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에르시온을 대표해 온 사람들은 늘 봐왔던 모습이였지만, 가이아인들은 그런 왕의 모습은 정말 낯설 수 밖에 없었다.


가이아인들 중 그런 그를 감당할 사람은 오직 노련한 아스테인 누마미스 뿐이였다. 마음이라도 통한 듯 누마미스는 워드루프의 손을 잡은 채 빛의 사원 내부로 안내했다.


“만찬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시지요. 에르시온의 왕이시여.”


“감사합니다. 여긴 정말 신비롭군요!”


워드루프가 사원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을 했다.


“이 곳이 가이아가 신지구에 내려와서 가장 먼저 지은 건축물입니다. 루흐다 문명의 유적 위에 세운 곳이지요.” 누마미스가 설명을 했다.


“여기에 오니 제가 하나 제안을 하면 어떨까요? 이 신성한 곳을 앞으로도 양 국가의 만남을 위한 장소로 삼는게 어떻겠습니까?” 워드루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 가이아는 여기에서 1년에 한번씩 집회를 갖습니다. 신성한 혜성을 기리는 것이지요. 그 혜성이 오는 날은 이 세상에 무언가 중대한 변화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아스테는 위엄있게 이야기했다.


“오! 그거 재밌는 이야기군요. 그렇다면 그 혜성은 언제쯤 다시 신지구로 옵니까? 설마 옛날 지구처럼 여기로 부딪히거나 하진 않겠지요?” 워드루프가 농담을 섞어가며 물었다.


“우리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분명한 건, 그 혜성이 당신들의 도착을 미리 예견했다는 것이지요. 나는 그게 틀림없는 길조라고 생각합니다.”


누마미스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길조라….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워드루프는 웃으며 공감을 표했다. 이윽고 두 정상은 만찬을 나누며 두 나라가 품고 있던 미래가 불확실했던 문제들을 이야기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협상은 생각보다 잘 마무리 되었다. 가이아의 아스테는 이니티움 평야를 에르시온에게 양도하기로 결정했고, 에르시온의 왕은 평화를 약속하고, 가이아인들을 위해 발전된 과학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가이아와 이티니움 조약을 체결하면서 에르시온 왕국은 안정을 보장받게 되었다. 바야흐로 에르시온의 황금기가 도래하고 있었다. 과거 각 가문의 모함이 착륙했던 곳은 도시로 발전하여, 그 곳을 중심으로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살 곳을 찾아 자유로워졌으며, 어느 누구도 불행하거나 억압받는 사람이 없는 풍요로운 시대가 워드루프 왕의 시대에 펼쳐졌다. 젊은 시절 워드루프의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이 황금기의 상징은 바로 ‘아크 더 베르니아’라 불리는 봄의 정원이였다. 조약 이후 에르시온을 방문한 가이아의 사절단이 임시로 수도로 삼고 있던 과거 플랜트 부근의 땅 위에 신지구의 아름다운 식물들을 심어준 것이 기원이 되었다. 가이아 사절단의 노력으로 플랜트는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났고, 특히나 봄이 되면 여러 빛깔이 반짝이는 꽃들이 피어나 누구나 감동케하는 모습을 연출해냈다. 이에 워드루프는 가이아의 언어에서 봄의 정원을 뜻하는 ‘아크 더 베르니아’를 수도의 이름으로 정했다.


이렇듯 에르시온의 전성기는 가이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발생할 불행의 씨앗 또한 거기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왕가로부터 개척권을 인정받은 코인 트러스트 가문들이 그 주역이였다. 왕으로부터 특권을 받은 그들은 점점 이 세상이 제공할 부에 취해 탐욕에 빠졌다. 신지구에 널리 퍼져있는 미스트롤리움이 그 대상이였다. 그들은 미스트롤리움으로 가동하는 핵융합로를 온 도시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핵융합로의 혜택으로 에르시온의 도시들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국민들은 우주에서 누리지 못했던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미스트롤리움의 수요는 점점 급증해 에르시온 영토 내의 미스트롤리움 광산만으로는 수요가 부족한 지경에 달했다.


이에, 코인 트러스트는 가문은 왕국의 남쪽인 가이아의 국경 너머까지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가이아인들과 마찰이 빈번해졌고 이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지키고자 워드루프왕의 에르시온 선언을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였다.


‘가이아인들은 생존을 위해 위대한 선조들의 가치를 버린 자들이다. 그들은 진화실험으로 탄생한 변종일 뿐 자비를 배풀 가치가 없으며, 과거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켜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듯이 우리도 그리하여야 마땅하다.”


이들 때문에 에르시온과 가이아의 관계는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하고 조정해야할 워드루프 국왕은 점점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에르시온이 한참 누리고 있는 전성기를 서둘러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코인 트러스트를 제재해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결국 가이아와의 평화와 왕국의 번영 중 그는 후자를 택할 수 밖에는 없었다.


노인인 된 탓일까, 옛날만큼의 총명함을 잃어버린 워드루프 왕은 코인 트러스트를 방관만 하고 있었다. 현재에 달콤함에 굴복함으로서 결국 그는 신지구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워 놓게 되었다.

댓글 0개
0
댓글

의견을 공유해보세요댓글을 남기려면 가입해주세요.

댓글 0개
logo_05.png

함께 꾸는 꿈은 현실! Dream together, Make it Real!

Copyright © DREAMER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