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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face
2021년 12월 22일

시즌3. 5. 팔콘형제

게시판: Three Kingdoms 소설

에르시온 왕국의 중앙의회 대회의장에는 연맹의 모든 영주와 의원들이 긴급하게 소집이 되어 있었다. 천장에 투사된 대형 입체화면에는 ‘빛의 사원’을 점령한 ‘리바이던’호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비춰지고 있었고, 삼삼오오 무리 지어 의원들과 영주들이 혼란스럽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 보였다. 중앙의 특별석에는 황제와 로이 황태자가 나란히 자리했고, 그 아래 단상에서 의원들과 영주들을 이끌고 있는 크산 의장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도발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미개한 반란자들과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저들의 도발에 말려든다면, 이후로 에르시온은 영원히 저 미개한 반란자들에게 끌려다니게 될 것입니다.”


“옳소!”


크산의 단호한 발언이 이어지자 좌중들로부터 동의 박수와 환호성이 연신 터져나왔다. 크산은 박수소리가 잦아들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개 해적 무리가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단독으로 벌일 수 있다고 보십니까?”


크산의 갑작스런 질문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크산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는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배후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틸리아테페에서 패퇴한 카일럼의 술책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저토록 큰 함선이 카일럼의 영공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겠습니까?”


크산이 말이 끝나자 다들 크게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릎을 치며 격렬한 동의를 하고 있었다. 로이는 이런 반응이 못마땅했는지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크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 지금 즉시 해적들의 무리를 소탕하고, 내친 김에 바로 카일럼을 향해 진격해야할 것입니다.”


“옳소!”


“해적들과 카일럼에게 죽음을!”


“출정하자!”


일부 강경파인 영주들과 의원들이 소리를 지르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자 장내는 금방 달아오르고 있었다. 크산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으며 황제를 압박하듯 쳐다보았다. 황제는 난감할 뿐이었다. 의회의 영주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로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그는 차분하게 좌중들을 둘러보며 말을 시작했다.


“과연 몇 명이나 살아 돌아오리라고 보십니까?”


로이의 한 마디로 들끓어오르던 장내가 일순 조용해졌다.


“지금 빛의 사원에는 우리 에르시온의 백성 만 여명이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무리한 진압 작전으로 빛의 사원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면, 과연 저 인질들 중 몇 명이나 목숨을 부지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로이의 말에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큰 목소리로 선동을 하던 강경파 의원들과 영주들도 로이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로이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우주공간에서 해적무리의 전투력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저들의 지도자 로스트가 과거 우리의 용병장으로 활약하며 ‘아수라’의 방어진마저 뚫어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진압을 위해서는 함대간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질들 중 대부분은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조금식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빛의 사원에 잡혀있는 인질 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귀족들과 유명인들이 많았다. 인질의 대부분이 죽게될 것이라는 로이의 말에 모두는 머릿속으로 자신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 빛의 사원에 갇힌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지 헤아리기 바빴다.


“현재 카일럼이 개입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질들 중 카일럼의 백성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사태의 전말을 정확히 파악하고, 협상을 통해 이번 사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것이 에르시온의 황태자가 할 말이라고 생각하시오!”


잠자코 듣고 있던 크산이 일갈하며 나섰다.


“그 말은 카일럼에게 먼저 꼬리를 내리고, 반란의 무리들과 타협을 하자는 것이 아니오!”


크산은 분위기가 로이 쪽으로 흘러가자 그것을 끊기위해 나선 것이었다. 로이는 크산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목숨입니다. 국가의 위신이나 명분이 아니에요.”


“흠… 과연 그런 것이오?”


크산이 냉소하며 로이의 말을 받아쳤다. 로이는 크산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잠시 크산을 쳐다보았다. 크산이 소리를 높이며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어린 카이 왕자가 행방이 묘연하다 들었소. 늘 함께 다니던 왕자의 노리개, 그 가이아 볼모 녀석과 함께 말이오. 혹시 카이 왕자가 경솔한 행동으로 사원에 인질로 잡혀있는 것은 아니오? 지금 황태자께서는 사사로운 정에 매여 국사를 그르치려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오.”


크산의 말이 끝나자마자 좌중들이 급격하게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다들 처음듣는 얘기라 사실 확인을 하느라 바빴다. 황제의 표정도 굳어가고 있었다. 로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크산의 말을 받았다.


“설사 카이 왕자가 그곳에 있다고 해도, 지금 그 아이는 만여 명의 에르시온 인질들 중 단 한 명일 뿐입니다.”


로이의 말에도 장내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로이는 목소리를 높여 침착하게 다시 말했다.


“그 만여 명의 인질들은 누구입니까? 모두 다 바로 여기 모이신 의원들과 영주들의 가족들이고 친척들입니다. 경솔하게 대처하기라도 한다면,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스스로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는 우를 범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그것을 바라는 것입니까?”


로이의 말은 좌중을 압도할만큼 강력했다. 그 누구라도 감히 귀족들의 가족들을 희생시켜가며 전쟁을 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었다. 크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일 자신의 주장대로 강경진압에 나섰다가 로이의 말대로 대형 유혈 사태라도 발생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 분명했다. 크산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로이의 시선을 느꼈다. 비록 지금은 한 발 물러서지만 다음에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는 듯 크산 역시 로이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서로의 시선이 뜨겁게 격돌하자 주변 사람들은 그저 숨죽이며 지켜볼 수 밖에는 없었다.


한편, 카일럼 역시 크롬을 중심으로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크롬은 군지휘관들과 신하들을 도열시켜놓고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하고 있는 지휘관들과 신하들과는 달리 승상 버간만이 크롬 몰래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로스트의 리바이던호라…. 빛의 사원은 아수라의 작동 범위 밖이고, 인질이 만여 명…. 더군다나 레나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니….”


크롬이 나지막히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입을 다문 채 대답이 없었다.


“에르시온과 가이아의 반응은 어떠하냐?” 크롬이 신중하게 물었다.


“에르시온과 가이아 모두 각각 만여 명 정도의 인질이 잡혀있다 하옵니다. 현재로서는 양국 모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대책을 고민 중인 듯 합니다.”


“일단 전체 함선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려놓아햐 하지 않겠습니까?” 한 장군이 용감하게 나서 크롬에게 말했다.


“명을 내리신다면 소장들 목숨을 걸고 반드시….” 다른 장군도 합세하여 의지를 불태웠다.


“아니다.” 크롬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장군들을 말렸다.


“아수라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는 우리 카일럼은 원정함대의 능력에 취약하다. 게다가 상대가 아수라의 방어를 한번 뚫은적 있는 해적왕 로스트라면… 원정함대가 오히려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크롬의 말에 모두들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수라의 지원을 받는 육상부대와 달리 아수라의 작동범위 밖에서 함대전이 벌어진다면 카일럼은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결국, 아수라의 위치를 움직일 수 밖에는 없는 것인가….”


크롬이 고심하다가 말을 던졌다. 다들 놀랍다는 표정으로 할 말을 잃은 채 크롬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버간이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대치중인 틸리아테페의 전선은 물론, 카일럼 본토의 영공 방어마저 큰 틈이 생기고 말 것입니다. 게다가 가까스로 잠재운 후방 지역에서의 반란이 다시 번질 수도 있음을 유념해주소서.”


또 다른 신하가 눈치를 보다가 급히 호응하며 나섰다.


“폐하, 아수라의 이동은 최후의 수단이옵니다. 신중하소서.”


“신중하소서!”


일제히 모든 신하들이 소리를 높여 외쳤다. 크롬은 고민에 빠졌다. 꽉 쥔 주먹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를 보는 버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고 있었다.


에르시온의 황제의 집정전에는 황제와 로이가 단둘이 남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황제는 다소 지친 안색으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로이가 침착하게 황제를 위로했다. 황제는 로이를 바라보았다. 로이의 얼굴을 평온했다.


“지금 카일럼의 크롬 역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소자는 이번 사태를 오히려 양국간 평화협상의 계기로 만들어볼까 합니다.”


“음….”


“최대한 빨리 크롬을 만나러 카일럼으로 떠나겠습니다.”


“정말로 그럴 생각이냐? 너무 위험하지 않겠느냐….”


황제의 걱정스런 말에 로이는 살짝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지금 가장 큰 위험에 처해있는 것은 인질로 잡혀있는 백성들일 것입니다. 명색이 황태자라는 자가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위험을 마다한다면 어찌 백성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로이야….” 황제가 로이의 손을 잡았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로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잔잔한 눈빛으로 로이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수많은 비행선들이 정박해있는 빛의 사원의 격납고 통로의 중간중간에는 점거에 성공한 해적들이 순찰을 돌며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카이와 제다, 레나는 구석의 기둥 뒤로 몰래 숨어들어가 몸을 숨긴 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일단 여기를 빠져 나가서 이곳 상황을 외부에 알려야 해.” 카이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비행선을 빼내는 것조차 쉽지 않겠는걸?” 제다가 주변을 돌아보며 답했다.


“설사 비행기를 빼낸다해도, 주변의 포위망을 어떻게 빠져나가려고?” 레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일단 비행선만 빼 나오면 그걸로 만사 오케이야. 그 다음은 나한테 맡기라구.”


카이가 레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윙크까지 날리며 말했다. 레나는 자신만만한 카이가 영 못미더운 것 같았다. 그런 레나를 보며 제다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와 함께 가는 거… 위험할지도 몰라.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탈출하려는 거야. 이곳에서 차분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해.”


“야! 너 왜 애한테 쓸 데 없이 겁주고 있어! 이게 얼마나 스릴 있는 대박 모험인데!”


카이가 정색하며 제다에게 말했다. 제다는 그런 카이가 황당할 뿐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 역시 여기 잡혀 있으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야.”


“역시! 너에게도 ‘탐험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거야! 아 이 운명적 느낌….”


카이가 레나의 말에 감격해하며 반색했다. 제다는 그런 카이가 창피한듯 슬쩍 시선을 돌렸다. 레나는 카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냥 여기 남아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했다.


“자! 모여봐!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카이는 두 사람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쩐지 신나있었다. 귓속말로 카이의 작전을 들은 레나가 버럭 화를 내었다. 제다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뭐? 머라고?”


카이는 싱글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제다는 아무리 반대를 해보아도 카이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측은한 표정으로 레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요란한 그래피티로 치장된 블랙팔콘 근처에는 두 명의 해적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해적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거기 누구냐?”


“꺄악!”


찢어질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해적들이 달려갔다. 거기엔 레나가 주저 앉아 있었다. 레나는 다리를 다친 듯 한 쪽 발목을 잡은 채로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넘어져서 놀란 탓인지 드레스가 위로 말려 올라가 스타킹을 신은 레나의 허벅지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여.. 여긴 어디죠? 해적선을 보고 겁이 나서 무작정 도망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길을 잃어서 그만….”


레나는 겁먹은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적들은 레나 혼자만 있는 것을 보고 경계를 풀고 다가왔다.


“여기 둘 수는 없으니 데려가지.” 해적 하나가 말했다.


“어이, 아가씨 일어나.” 나머지 해적이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아얏!” 일어서던 레나가 발목을 만지면서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왜 그래?”


“바… 발을 삔 것 같아요. 아까 소리치신 거에 놀라서 넘어진게 그만….”


레나가 다리를 뒤척이자 허벅지가 더 드러나 보였다. 그런 모습에 자신들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던 해적들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어쩔 수 가 없군. 부축해 줄 테니 내 손을 잡아.


야 너도 이리와서 이 아가씨 좀 일으켜”


해적들이 레나를 일으키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뒤에서 카이와 제다가 나타나 익숙해 보이는 기술로 각자 한 사람씩 손등으로 해적들의 뒷목을 내려쳤다. 불의의 일격을 맞은 해적들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해적 한 명이 쓰러지며 레나를 덮쳤다. 레나는 해적에게 꼼짝없이 반쯤 깔려버리고 말았다.


“깍!”


“오케이~ 성공! 내 말대로 하면 이렇게 쉽잖아!”


카이는 레나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해적들을 보며 신이나서 말했다.


“연기를 아주 잘하는 걸…. “ 제다 역시 카이의 말도 안되는 작전이 성공하자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빠, 빨리 이 사람 좀 치워 줘!”


“알았… 아, 그 전에… 음….”


카이는 므흣한 표정을 지으며 레나의 치마쪽을 가리켰다. 레나는 카이와 제다의 시선이 자신의 드러난 허벅지에 있음을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 드레스를 황급히 끌어내렸다.


“뭘 봐!”


“아.. 아냐.. 난.” 제다가 손사레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빨리 블랙팔콘으로!”


카이가 레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세 사람은 블랙팔콘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블랙 팔콘의 시동음에 격납고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해적들이 깜짝 놀라 뒤늦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블랙팔콘이 격납고를 빠져나와 내부통로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해적들이 총을 쏘며 기체에 접근을 시도해보았지만 블랙팔콘의 맹렬한 기세에 눌려 좀처럼 다가갈 수 없었다. 오히려 블랙팔콘이 좌우로 급회전을 하며 엔진의 추진력을 이용해 주변에 달라붙는 해적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이놈들아! 맛이 어떠냐?” 카이는 신이나서 조종간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다.


“장난 그만치고 어서 활주로로 가” 제다가 카이에게 말했다.


해적들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황급히 무전으로 연락을 하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굉음을 내며 진입통로의 육중한 철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블랙팔콘에게 어설픈 총질은 소용이 없다니까! 해적들 생각보단 순진하군.” 카이가 웃으며 말했다.


“활주로로 향하는 통로가 닫히고 있어!” 창밖을 보던 제다가 다급히 말했다.


“걱정하지마! 활주로까지 나가지 않아도 뜰 수 있어.” 카이는 여유만만이었다.


“말도 안돼! 격납고 통로 안에서 비행선을 발진시키겠다는 거야?” 레나가 경악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꽉 잡아!”


카이가 조종간을 힘껏 당기며 말했다. 순식간에 최고출력에 다다른 블랙팔콘이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조종석에 앉은 세 사람의 몸이 뒤로 충돌하듯이 젖혀졌다.


“악!” 레나가 소리쳤다.


“으으~ 카이.. 조심해!” 제다가 속도감을 간신히 이겨내며 말했다.


“유~후!” 카이는 그저 신난 것 같았다.


서서히 닫겨져 가던 육중한 철문이 거의 다 닫혀서 이제는 가느라란 틈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천장으로 충돌할 듯이 날아오른 블랙팔콘이 이륙하자마자 기체를 세로로 기울여 날개를 일자로 세웠다. 뒤쪽에서는 전열을 가다듬은 해적들이 발칸포로 사격을 해오고 있었다. 다행히 정통으로 맞지는 않았지만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기체로 진동이 느껴질만큼 강력한 위력이었다. 카이는 좁다란 철문의 틈을 향해 조종간을 있는 힘껏 당겼다. 이 속도로 틈을 통과하지 못하고 철문에 부딪힌다면 기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뻔했다.


“고! 고! 고!” 카이가 외쳤다.


“난 안볼래!” 레나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이걸 왜 안 봐! 야호!” 카이가 환호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제다가 눈을 부릅뜨고 비명을 질렀다.


남은 틈 사이로 가까스로 블랙팔콘이 빠져나가자마자 육중한 철문이 쾅하고 닫혔다. 발칸포의 강력한 빔이 뒤늦게 철문으로 사정없이 꽂히며 굉음과 함께 불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블랙팔콘이 날렵하게 기체를 꺾으며 쏜살같이 활주로 터널에 진입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위 포탑에서 포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이는 능숙하게 사방이 막힌 활주로 터널을 이리저리 방향을 꺾으며 아슬아슬하게 집중포화를 피해, 순식간에 활주로를 벗어나 우주공간으로 솟아올랐다.


“와우!”


눈 앞에 우주공간이 펼쳐지자 제다와 레나가 탄성을 질렀다.


“어떠냐! 이 형님의 실력이!” 카이가 웃으며 말했다.


“최고야!” 레나가 외쳤다.


“이건 정말 인정한다! 멋졌어. 카이.” 제다가 말했다.


“오늘 기분 찢어지는구나! 우주 끝까지 함께 가보자!”


“아직 해적 전투기들이 추격하고 있어. 끝까지 방심하지마.” 제다가 말했다.


“따라올 수 있음 따라오라고 해. 절대 잡히지 않을테니까.”


카이는 고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기원의 혜성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블랙팔콘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리바이던 호의 조타실에서 유유자적하며 앉아있던 로스트는 다급한 부하의 보고를 받고 흠칫 놀랐다.


“화면을 띄워봐.”


로스트가 손짓하자 화면에는 빛의 사원을 빠르게 벗어나는 블랙팔콘이 보였다. 울긋불긋 우스꽝스러운 그래피티 페인팅이 되어있는 모습과는 달리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며 추격하는 해적 전투기를 요리조리 따돌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급선회를 할 때마다 마찰열에 의해 비행선 표면의 그래피티가 조금씩 지워지면서 매끄러운 광채의 검은 선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한 쪽눈을 찡그리며 바라보던 로스트가 이내 묘한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레드팔콘을 준비해! 출격한다. 오랜만에 쓸만한 사냥감이 나타났어.”


“네?” 부하들이 놀라 물었다.


“돌아올 때까지 이곳의 지휘는 부함장이 맡는다.


만약에 내가 돌아오는게 너무 늦으면, 니들끼리 다시 투표를 해서 선장을 뽑아. 하하하.”


당황하는 부하들을 남기고 로스트는 서둘러 조종실을 떠났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레이저를 쏘며 끈질기에 추격해오던 해적 전투기들이 모두 뒤쳐진 것을 확인하고 제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카이는 마치 게임을 하듯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카이를 보고 있는 제다에게 카이는 환하게 웃으며 윙크를 날렸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는 제다를 보며 카이는 오른손을 높게 들어보였다.


“하이파이브?”


카이와 제다는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레나는 식은 땀을 훔치다가 갑자기 화가 난 듯 카이에게 외쳤다.


“너무 무모하잖아! 이런 괴상한 비행선으로….”


“아가씨 이래 보여도 나의 애마는 무척 빠르다오. 어디로 모실까요?”


카이가 농담조로 웃으며 레나를 달랬다. 레나는 계기판의 속도계를 바라보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엄청난 속도가 표시되어있었다.


“뭐야? 계기판도 고장나 있잖아.”


“아니 계기판은 매우 정확하게 작동되고 있는 걸?”


“이 고물 깡통 우주선이 전설의 팔콘호라도 된다는 거야?”


어이없다는 말투로 레나가 말하자 제다와 카이는 동시에 뜨끔했다.


“그.. 글쎄….”


제다가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자 카이가 얼른 레나쪽을 돌아보며 화제를 바꾸어 말을 걸었다.


“친구, 우리를 못믿겠다면 다시 돌아가서 고이 잡혀 계시든지. 후후후.”


“못믿겠다는 말은 아니거든” 레나가 뾰루퉁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제 그 면사포 좀 벗는게 어때? 답답하지 않니?”


카이가 다시 앞을 보며 조종간을 잡은 채 말했다. 레나는 카이의 말에 그제서야 자신이 면사포를 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잠깐 망설이던 레나는 조심스럽게 면사포를 떼어냈다. 그러자 레나의 얼굴이 드러났다. 제다가 힐끔 뒤를 바라보다 레나를 보고 놀라서 굳어버릴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거봐. 무진장 이쁘다고 했잖아!”


카이는 옆 눈으로 놀란 제다를 흘깃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다는 도저히 레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제다의 시선을 느낀 레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애써 모른척 하고는 있었다. 그렇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띠! 띠! 띠!”


레이더에서 경고음이 급하게 울리고 있었다. 후방에서 레이저 광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였다. 카이와 제다는 놀라 상황을 확인한 후 빠르게 기체를 급선회했다. 후방에서 날아온 레이저 광선은 블랙팔콘의 옆쪽을 스치듯 비켜갔다. 뒤이어 블랙팔콘의 옆으로 급선회하여 붉은 색의 비행선이 따라 붙기 시작했다. 로스트가 타고 있는 ‘레드팔콘’이었다.


“우릴 쫒아오다니 보통 녀석이 아니야. 따돌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아. 전투준비를 해야겠어.” 카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알고 있어. 벌써 준비하고 있다구!” 제다가 분주히 움직이며 답했다. 뒤에 있는 레나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레드팔콘의 조종석에 앉아있는 로스트는 가까이에서 블랙팔콘의 존재를 육안으로 확인한 후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런 곳에서 레드팔콘의 형제를 만나다니… 어디 누구신지 한번 확인해볼까?”


레드팔콘이 급선회하며 블랙팔콘의 측면을 파고 들었다. 두 비행선이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로스트는 조종석에 앉아있는 카이와 제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로스트는 조종사들이 어리다는 것을 알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완전 애송이들이잖아….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군.”


로스트는 화상교신을 시도해보았다. 화면으로 조종석에 앉아있는 카이와 제다가 나타났다.


“이봐, 꼬마 친구들 제법인데? 순순히 포기하면 목숨은 살려주지. 고문도 안할 수 있어. 고분고분 그 비행선을 바친다면, 우리편에 넣어줄 수도 있고. 물론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겠지만 말이야. 후후후.”


로스트와의 추격전을 펼치며 묘한 흥분을 느끼던 카이는 화면에 나온 로스트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조종간을 당겨 급선회를 하며 말했다.


“애꾸눈 아저씨. 미안. 이 몸들은 인질로 계시기에는 난처한 사정이 있어서…”


화면 가득 혀를 내밀며 약을 올리는 카이의 얼굴로 가득차버렸다. 로스트 역시 조종간을 당겨 블랙팔콘을 쫒기 시작했다. 곡예비행을 하며 로스트의 공격을 피하는 카이와 집요하게 후미로 따라붙으며 포격을 가하는 로스트. 두 사람이 조종하는 비행선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여 불가능한 각도의 급선회를 거듭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블랙팔콘 후미에서 큰 충격이 전해졌다. 레나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로스트가 날린 레이저가 블랙팔콘에 적중한 것이었다. 다행히 정통으로 맞지않고 살짝 빗나간 것이라 비행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카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봐 아저씨! 조용히 사라지려고 했는데 너무 하잖아! 참을 만큼 참았다구!”


카이가 기수를 휙 돌리더니 공격을 시도했다. 형제 비행선끼리의 거친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맹렬하게 스치고 격돌하면서 물고 물리면 추적전이 펼쳐지며 우주공간에는 원색의 레이저 광선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신지구 역대급 최고의 공중전이 지금 펼쳐지고 있었다.


“뭐야… 이 비행선의 성능은… 도대체….”


레나는 놀란 입을 좀처럼 다물 수 없었다. 비행선 조종이라면 자신도 꽤나 많이 해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압도적인 성능과 폭발적인 움직임은 카일럼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체들을 상대로 전투를 펼쳐온 아수라가 새삼스럽게 대단하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후후후.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니까. 아가씨.”


카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잠시 말하더니 이내 다시 조종에 집중했다. 잠시의 방심에도 여차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제다가 전후방의 포를 조준해 레드팔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다가 날린 회심의 일격이 레드팔콘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젠장! 맞출 수 있었는데!”


제다가 손잡이를 거칠게 내려치며 아쉬워했다. 레나는 갑작스런 전투의 상황이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새 선장 뽑으라는 말… 잘못하다간 진담이 되겠는걸… 좋았어 한 번 제대로 붙어보자구. 좋은 가르침을 주지.”


로스트는 블랙팔콘의 현란한 기동에 감탄하며 게임을 즐기듯 신이 나있었다. 그는 이제 진심으로 싸울 준비를 마치고 블랙팔콘에 달려들고 있었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로스트는 상대가 어리다는 것을 잠시 잊고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공중전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묘기에 가까운 비행술로 서로의 꽁무니를 노리고, 서로를 향해 쏟아지는 포격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면서 반격에 반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히트!”


로스트가 마침내 블랙팔콘의 뒤를 잡고 포격을 명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