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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face
2021년 12월 22일

시즌3. 8. 불시착

게시판: Three Kingdoms 소설

대낮이지만 빽빽한 밀림의 거목들과 자욱한 안개때문에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거목들 사이에 불시착한 블랙팔콘이 처참하게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후미 엔진과 군데군데 부서진 장치들에서는 연기가 피어 올랐고 기체 곳곳에서 간간히 불꽃이 튀고 있었다. 헤치가 열리고 카이, 제다, 레나가 선체를 힘겹게 빠져 나왔다.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땀과 충돌시 생긴 먼지로 각자 얼굴이 거뭇거뭇해져 있었다.


카이가 아끼는 장난감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안타깝게 기체를 이리 저리 살펴보다 금세 표정이 밝아져서는 기체를 탕탕 치더니 그제서야 너스레를 떨었다.


“역시 신지구 최강기체 블랙팔콘의 이름 값을 하는군! 안그러냐? 제.. 아니, 에쉬야.”


제다도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됐는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다행히 우리들도 죽지 않았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나도 착륙시 충격을 받았는지 목뒤를 주무르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파, 역시 따라 나서는 게 아니었어. 반지 찾아 줬다고 내가 너무 믿었던 거야.”


그말은 들은 카이는 반색하며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했다.


“나를 믿게 됐다고? 그 짧은 시간에?”


카이는 갑자기 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레나의 손을 덥썩 잡고 말했다.


“역시! 우리는 이루어질 운명이었던 거야!”


레나는 갑작스런 카이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뿌리쳤다.


“무슨 소리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


제다는 둘이 뭘하든 상관없다는 듯 심각하게 통신장비를 살펴보며 딱딱하게 보고하듯 이야기를 했다.


“통신장비가 완전히 손상이 됐어. 외부와 교신이 가능한 곳까지 빠져나가야 해.”


제다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카이는 심각한 얼굴로 제다 얼굴 옆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얼마나 멀까?”


카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밀며 제다가 말했다.


“저리 치워. 글쎄? 좌표 상으로 보면 걸어서 족히 삼사일은 걸릴 거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레나는 엄지 손톱을 깨물며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걸 어쩌지...”


카이는 걱정하는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새 출발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야~호. 이제부터는 신지구의 밀림을 탐험하는 거야. 정말이지 첫 모험부터 엄청 버라이어티하구만.”


레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정말 갈 생각이야? 어디로 갈지는 알아? 차라리 여기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낫겠어!”


카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남얘기하듯 제다에게 물었다.


“에쉬야. 이런 오지에 오래 머무르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지 않니?”


“그. 그렇지.”


카이가 마지못해 맞장구를 쳐주자 레나의 얼굴이 살짝 걱정스럽게 변했다.


카이는 은근히 겁을 먹는그런 레나의 행동이 재미있는지 좀 더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그리고 신지구의 토종 야생동물 중에서 굉장히 위험한 것들이 이런데 산다고 들었는데?”


제다도 좀 거드는 재미가 들었는지 쿵짝을 맞춰다.


“그렇지. 이 지역은.. 특히 대형뱀이나 대형거미류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어.”


“너네들 일부러 나 겁주려고 그러는거지?”


레나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카이의 말은 내내 무시를 하고 있었지만, 제다까지 합세를 하니 살짝 겁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카이가 그런 레나를 힐끗 바라 보더니 더블 매그넘을 뽑아들고 선빔을 연달아 발사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는 광선빔들에 레나는 깜짝 놀라며 두 눈을 감고 비명을 질렸다.


“꺅! 도대체 무슨 짓이야!”


카이는 약간 거만한 표정으로 턱짓으로 총을 쏜 곳을 가리켰다.


“에쉬야. 저런 것들 말하는 거야?”


제다도 총을 쏜 방향을 유심히 살펴 보며 한술 더 떴다.


“아주 치명적인 종류들이지. 대형 전갈류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아주 위험해.”


레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좌우를 살펴보다 팔뚝만한 크기의 전갈 두마리가 레이저빔에 맞아 동강난 채 타고 있는 걸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호들갑을 떨었다.


“악!!! 이게 뭐야! 으악!”


카이와 제다가 마주보고 피식하고 웃었다. 적어도 레나를 놀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호흡이 잘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잠깐의 장난으로 기분을 전환한 카이와 제다는 신속하게 블랙팔콘의 화물칸에서 비상용품들을 꺼내 비행보드를 싣고 화물용 자동트레일러를 펼쳤다. 비상식량을 챙긴 후 화물칸 바닥의 무기고에서 광선총 여러 정과 에너지탄창 수십 개, 화염방사기, 기폭 부비트랩 장치 등을 꺼냈다. 둘은 숙달된 병사들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레나는 여전히 겁먹은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뒤쪽에 물러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카이가 나뭇가지와 잎으로 블랙팔콘의 선체를 위장시킨 뒤에 다정스런 말투로 블랙팔콘을 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친구. 곧 찾으러 올 테니까.”


레나는 사뭇 진지한 카이의 모습이 다소 낯설었지만 또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언제까지 저럴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다가 좌표기로 방향을 설정한 후 손짓을 하자 차례로 세 대의 비행보드가 띄워졌다. 그걸 타고 출발하는 세 사람 뒤로 화물용 자동 트레일러가 비행보드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세 대의 비행보드와 반중력 트레일러가 하늘에 닿을 듯 솟은 거목들 사이를 헤치고 습지를 벗어나자 고도를 높여 자욱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오지 밀림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국적 풍광의 천연림이 빼곡한 밀도로 끝도 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광경에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순간 탄성을 질렀다. 궁에서만 살던 아이들에게 장대한 대자연은 놀라움의 연속일 뿐이었다.


앞 쪽에 나타난 강줄기를 따라 밀림의 저공으로 비행하는 세 아이들에게 멀리서 장중한 울림이 들려 왔다. 호기심이 동해 속력을 내어 앞 쪽으로 가보니 깍아지른 듯한 절벽과 어마어마한 크기의 폭포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잠시 보드를 멈추고 웅장한 절경을 위에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 순간 만큼은 미지의 땅에 불시착을 했다는 사실과, 각자 고향에 두고온 자신들의 신분 조차 잊어버린 채 올곧이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레나는 물방울이 부서지며 실려오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살며시 눈을 감아보았다. 우뢰와 같은 폭포 소리가 자신을 뒤덮어오고 있었다. 가벼운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이 때 폭포 소리를 뚫고 카이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위험해!!!”


갑자기 다급히 카이가 레나를 껴안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레나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악! 또 뭐야!”


카이가 레나를 안은 채, 제다를 향해 소리쳤다.


“조심해! 화룡조야.”


흉폭해 보이는 외양의 거대한 새 한마리가 레나와 카이를 순식간에 스쳐 날아갔다. 날아간 쪽을 보니 다시 화룡조가 방향을 꺽어 세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카이가 제다를 보며 다급히 말했다.


“테이밍할 수 있겠어?”


제다가 입술을 꽉 다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처음 본거라 힘들겠지만 할 수 없지. 어디 한번..”


제다가 서둘러 보드를 몰아 화룡조를 향해서 날아갔다. 공격해 오는 화룡조를 교묘하게 피하면서 정신을 집중해 테이밍을 하기 시작했다. 화룡조는 카이와 레나의 눈 앞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레나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카이의 품을 파고 들었다. 카이는 침착하게 한손으로 ‘더블매그넘’을 들어 화룡조를 조준했다. 이제는 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만!”


제다가 소리쳤다. 화룡조가 급하게 방향을 바꾸어 솟아 올랐다. 제다의 테이밍이 성공한 것 같았다. 테이밍이 성공한 것을 알고서는 레나가 숨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헉..헉.. 죽는줄 알았어!”


테이밍이 된 화룡조는 공중을 선회하며 커다란 날개를 펄쩍이며 세 사람의 주위를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제다는 흥분한 화룡조를 다독이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카이는 이제 좀 여유가 생겼는지 제다를 보며 윙크를 하며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와! 대단해. 역시 너는 내 친구 자격이 있어. 신지구 최강 테이머 제.. 아니, 에쉬!”


제다는 힘에 겨웠는지 숨을 고르며 말을 뱉었다.


“휴.. 화룡조는 다행히 드래곤과 비슷했어. 하지만 모르는 종을 테이밍 했더니.


헉..헉.. 힘드네. 어지러워.”


“암튼 고생했어.”


레나도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기쁜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대단하다! 에쉬~”


“난 좀 쉬어야겠어.”


제다가 보드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카이는 제다를 보다가 문득 자신의 품에 레나가 안겨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능청을 떨기로 했다.


“아, 어지러워. 여자가 이렇게 쎄게 안아주는 건 난생 처음이야.”


카이의 말에 레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화들짝 떨어졌다.


“아, 미안.”


하지만 다시 주위를 맴도는 화룡조들을 발견하고 다시 카이를 끌어안고 말았다.


“꺅!”


보드 위에 걸터 앉아 그 모습을 보고있던 제다가 너털 웃음을 지었다. 화룡조가 제다 주변을 빙빙 돌고만 있었다. 제다가 미소를 지으며 슬쩍 일어났다.


“자! 이제 좀 더 빠른 걸로 갈아타볼까?”


세사람은 화룡조를 타고 쾌속으로 질주하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카이와 긴장한 얼굴이지만 서서히 얼굴에 미소가 맺히는 레나, 화룡조를 조종하는 제다, 세 아이들 모두 즐거운 얼굴이었다. 이때, 반투명의 구름 덩이가 전면에 등장했다. 뭉글뭉글 바람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진짜 구름은 아니였다. 제다가 구름의 정체를 알아보고 카이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공중해파리 떼야. 어쩌지?”


카이는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제다에게 물었다.


“쟤들은 테이밍 안돼?”


제다는 어이 없다는 듯이 두눈을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게 한두 마리니? 수백 마리야.”


카이가 씩 웃으면 한마디했다.


“화룡조 먹이도 먹일 겸, 정면돌파야!”


제다도 신이 났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좋아!”


레나는 둘이 하는 말을 듣다 갑자기 화들짝 놀랐다.


“정면돌파? 그러면, 설마. 아. 안 돼!”


카이는 자기 허리춤을 잡고있는 레나의 양손을 떼어 두손을 맞잡게 하고는 윙크를 날렸다.


“꽉 잡으라구!”


쏜살같이 앞으로 질주하는 화룡조 위에서 다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레나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화룡조가 앞에 있는 공중 해파리 떼를 향해 불을 토하자 빼곡히 몰려 있던 공중해파리들이 좌우로 쫙 갈라지며 길을 터주는 것 같더니 이내 화룡조를 둘러 싸고 촉수를 뻗어서 반격을 시작했다. 화룡조는 거침없이 뻗어 오는 촉수들을 불로 태우고 날개짓으로 떨쳐버리면서 앞으로 돌진했다. 반투명의 해파리 떼 들이 불에 타면서 마치 불꽃처럼 하늘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환호도 하늘로 함께 퍼져나갔다.


화룡조와 이별을 해야할 시간이었다. 야생의 생물이라 오래 함께 할 수 없다는 제다의 말에 카이는 못내 아쉬워했다. 절벽 끝에 내려선 아이들은 화룡조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화룡조가 그들의 주위를 몇 바퀴 선회하다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한참을 손을 흔들어 주며 아쉬운 듯 바라보는 아이들을 두고 멀어져가는 화룡조의 모습 위로 붉은 노을이 번져갔다.


다시 비행보드를 타고 갈 길을 채촉한 아이들은 낙조의 광선을 받으며 발 아래로 펼쳐진 밀림의 이국적인 풍광에 감탄만 연발할 뿐이었다.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즐거운 모습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를 하며 비행보드가 경쾌한 궤적을 그리며 미지의 신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카이와 제다는 어둠이 깔리자 부양보드를 나란히 세워 놓고 야영 준비를 서둘렀다. 합금 섬유로 만들어진 텐트하우스가 세워진 가운데에 모아온 나뭇가지로 능숙하게 불을 때고, 물을 끓이고, 비상식량으로 요리를 하는 카이와 제다를 레나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카이와 제다가 척척 해내자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제다가 야영지 주변으로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나서야 요리가 다 되었다. 카이가 제다를 부르자 제다가 요리에 넣어 먹을 수 있는 야생 허브를 캐왔는 지 높이 흔들어보였다. 아이들은 다함께 모닥불 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했다. 카이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 치우고 제다는 차분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레나는 비상식량 요리를 한 번 먹어보더니 의외로 입에 맞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카이는 하루종일 지쳤었는지 밥을 먹자마자 텐트하우스 안에 들어가더니 바로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텐트 바깥까지 카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나가 슬며시 제다 옆 모닥불 가로 다가와 궁금한지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어떤 아이들이니?”


제다는 뭔가 들킨듯 놀란 눈으로 레나를 보았다.


“?”


“궁금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들인지. 둘 다 예사롭지 않은 걸.”


“글쎄. 그건 말해주기가 좀 곤란한데. 난처한 일이 생길 수도 있거든.”


“...”


제다는 미소를 지으며 놀란 눈의 레나를 바라보았다.


“너 역시 예사롭지 않기는 마찬가진걸. 얼굴을 가린 차림새며, 보석함의 신기한 반지들 하며.”


레나가 피식 웃는다.


“그런가? 우리들은 서로 비밀이 많네.”


제다가 레나의 안색을 살피더니 모닥불에 무심한듯 장작을 던졌다.


“너도 눈을 좀 붙이도록 해. 피곤할 텐데.”


레나 피식 웃으며 제다가 던진 장작이 옆으로 떨어지자 다시 집어 모닥불 위에 올렸다.


“아니. 잠이 오지 않아. 너무 놀랐나 봐.”


“하긴.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니.”


“하지만 재미 있어. 이런 곳에 와 보기는 처음이니까.”


그러고는 잠든 카이를 바라보며 들으라는듯이 말했다.


“저런 괴짜를 만나기도 처음이고.”


제다도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좋은 녀석이야. 내겐 주.. 아니, 둘도 없는 친구이고.”


레나는 고개를 저으며 두 무릎사이에 턱을 괴고는 나뭇가지로 땅에 뭔가를 그렸다.


“난 도저히 갈피를 못 잡겠는걸. 후후후.”


“피터 녀석, 사실은 많이 외로운 아이야.”


“??”


“피터는 어머니 없이 혼자 자랐데. 어머니가 피터를 낳으시다 돌아가셨다고 했어.”


레나는 놀란듯이 무릎에서 얼굴을 들고 쳐다보았다.


“…”


“피터”의 아버지와 형님도 언제나 멀리 떠나 계셔야 했어, 전쟁 때문에. 그런데 남아 있는 주위의 어른들은 온통 믿을 수 없는 사람들 뿐이었지. 피터 녀석, 겉으로는 씩씩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이 많은 아이야.”


레나는 이내 무릎에 턱을 고이고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구나. 내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비슷한걸.”


“나도 사정이 있어서 오래 전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어.”


“가엽게도.”


제다도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모닥불을 보았다.


“그래서 둘이 친구가 된 거 같아. 같이 있으면 외로움을 잊을 수 있거든.”


이때, 레나와 제다의 등 뒤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어느새 잠이 깬 카이였다. 카이는 등 뒤로 조용히 다가가 양 손으로 두 사람의 입을 동시에 막으며 나직하게 귓속말을 했다.


“웁!”


“라이프 스토리는 나중에 나누고 잠깐 조용히 좀 해 봐.”


“???”


“무언가 이리로 다가오고 있어.”


제다가 놀라며 부비트랩 장치에 켜려고 손을 뻤어보았지만 카이가 얼른 저지했다. 카이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어둠 속을 살펴보다 허리에 찬 막대 조명탄을 꺼내 건너편 쪽으로 발사했다.


“펑!”


소리와 함께 주위가 환해지면서 맞은편에서 움츠린 채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눈이 부신지 인상을 쓰며 잔뜩 경계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노인과 아낙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초췌한 몰골에 세 아이들은 놀라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 고맙구나...”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촌로가 제다의 손을 잡으며 감사를 표했다. 아이들은 어둠 속에 있던 그 사람들이 갈 곳이 없이 떠도는 난민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노인과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닥불과 음식을 내어주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불가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난민들 사이에서 지치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돌보기 시작했다. 전부 하나 같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모습에 그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죠?”


사람들을 돌보던 카이가 뭔가에 분했는지 땅에 발을 구르며 말했다.


“우리는 북쪽 정착촌 사람들이란다. 전쟁통에 집과 땅, 가족을 잃고 헤매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 거친 황무지를 일구고 광물을 채취하며 겨우 살만한 마을을 만들어 정착했는데. 몇 일 전 화적단이 들이 닥쳤단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했지. 우리는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거란다.”


제다와 레나도 모두 놀란 표정으로 듣고 있는데 제다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다급히 물었다.


“군대는요? 근처에 마을을 지켜줄 군대가 있지 않나요?”


촌로는 카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군대? 군대라니. 이런 오지의 버려진 백성들을 위해 어느 왕국의 군대가 움직이겠니. 세 왕국의 군대들은 모두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로 바쁠 뿐, 우리 같은 난민들의 사정에는 관심이 없단다. 이렇게 버려진 난민들은 결국 어느 나라의 백성도 되지 못하는 게지.”


이때 “아악”하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 보자 한 여인이 아기를 춤에 안고 울고 있었다. 숨을 거둔 채 차갑게 굳어버린 아기와 아기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을 보고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할 말을 잃었다. 카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버려진 난민들.. 어느 나라의 백성도 되지 못하는...”


레나는 애가 타서 탄식을 했다.


“불쌍해서 어떡해…”


제다는 자신의 과거가 겹쳐서 생각났는지 한마디도 못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될 것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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